오는 14일 치러지는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입시 커뮤니티가 시끌시끌 합니다. 바로 ‘수능 샤프’ 때문입니다.
수능 샤프가 뭐냐고요? 2005년 이후 수능을 친 분들이라면 아실 텐데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 2006학년도 수능부터 시험 당일 수험생 전원에게 제공해 온 샤프입니다. 개인 필기구를 이용한 부정 행위를 막기 위해서였죠. 수능 당일 흑색 연필과 검은색 사인펜을 제외한 모든 개인 필기구 사용은 금지돼있습니다. 지난해 2019학년도 수능까지 14년간 수능 샤프가 사용되면서 이제는 중고장터에서 사고팔기가 이뤄질 만큼 ‘덕후’들도 생겼습니다.
커뮤니티가 시끌시끌해진 배경엔 문구업체 ㄱ사의 A샤프가 있었습니다. A샤프는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2011년 제외) 수능 샤프로 제공된 제품인데, ㄱ사가 올해는 수능에 이 샤프를 납품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한 수험생이 ㄱ사 홈페이지에 수능 샤프 납품 여부를 물었고 이에 사측이 “올해는 제공하지 않는다”고 답한 것입니다. 이후 ㄱ사는 “2006~2010학년도, 2012~2019 학년도까지 13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A샤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찬란한 미래를 응원합니다”라는 공지를 내놓았습니다.
여기서 수험생들의 ‘멘붕’이 시작됐습니다. A샤프가 올해도 수능 샤프가 될 것으로 기대해 오랜 시간 사용하며 손에 익혀온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입시 커뮤니티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펜을 쓰면 문제 풀 때 자꾸 신경이 쓰인다” “1년 내내 작년 수능샤프로 공부한 내 노력은 뭐가 되냐. 화가 난다”는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한 온라인 오픈마켓에서 ‘2020 수능 샤프 공식 지정’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ㄴ사의 B샤프를 팔기 시작하면서 혼란은 더해졌습니다.
이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는 수능 샤프 제품명을 알려달라는 요청이 수차례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평가원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수능 샤프의 제조사 및 기종 관련은 보안 사항입니다. 공개적으로 알려드릴 수 없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누리꾼들은 지난 여름 평가원 게시판에 올라온 질의 하나가 이번 ‘샤프 대란’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지난 8월25일 “현재 수능샤프로 납품되는 ㄱ사의 A샤프는 내부 메커니즘이 일본 필기구 회사의 ODM(제조업자개발생산)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안다”며 “수능 샤프는 국산 제품을 써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도 평가원은 “보안 사항이라 알려드릴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전국이 뜨거웠던 시기였던만큼 평가원이 이 같은 지적을 모른 체 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누리군들은 추측합니다.
수험생들의 간절함은 곧 수능샤프 제품명을 알려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달 21일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평가원의 ‘수능 샤프’ 제품명 공개를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등장했습니다. 청원인은 “학생들은 시험장에서 제공하는 샤프에 의해 상당히 큰 영향을 받게 된다”며 “평가원은 보안상 이유를 들어 필기구에 관한 정보를 일체 함구하고 있지만, 이 문제로 인해 일부 수험생들에게 커다란 불편이 야기될 수 있고 나아가 학생들의 대입 결과에도 작게나마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청원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어 평가원의 비공개 방침이 “적절치 못한 태도”라면서 “하루속히 평가원이 입장을 발표해 학생들이 수능 준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감사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평가원에게도 샤프 종류를 밝힐 수 없는 나름의 사정이 있습니다. 평가원 관계자는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평가원은 샤프는 물론이고 수능 당일 시험장에서 사용되는 그 어떤 물품에 대해서도 미리 정보를 공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제품 종류가 알려질 경우 이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더 큰 혼란을 막기 위해 보안 사항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수능 샤프 변경 여부가 포함된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며 “하지만 올해와 지난해, 지지난해 공고를 비교해보면 입찰 조건에 전혀 차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ㄴ사 또한 수능 샤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ㄴ사 관계자는 “‘2020 수능 공식 샤프’라는 광고 문구는 우리 회사가 아니라 오픈마켓 측에서 내건 것”이라며 “납품 여부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변수 하나라도 줄이고픈 수험생들은 각종 꿀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ㄴ사의 샤프를 미리 사서 연습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차라리 며칠 전부터 연필을 사용해 익숙하게 만든 뒤 시험 당일 연필을 챙기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수능 1교시부터 종료시까지 연필 8자루면 충분하다는 얘기도 함께요.
수험생들이 수능 샤프 하나에 울고 웃는 것은 이 시험이 인생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입시 공정성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샤프 종류를 알아내기 위한 학생들의 분투가 안타깝기도 합니다.
수능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올해 수능일은 예년보다 춥다고 합니다. 부디 사건사고 없이 무탈하게 시험이 치러지길 바랍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