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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상을 떠난 ABC 뉴스 앵커 피터 제닝스가 생애 마지막 앵커 멘트를 하는 순간, 그의 얼굴은 이미 반쪽이었고 목소리는 심하게 쉬었지만 특유의 품격과 위트는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제가 폐암에 걸렸다고 통보 받았습니다.” 

 

 

SBS 드라마 피노키오의 ‘나쁜 앵커’ 송차옥이 “제가 오늘 뉴스타임즈를 떠납니다”고 클로징 멘트를 하던 성탄 전야에, 저도 곧 앵커에서 물러난다는 발표가 났습니다. 오늘이 그 날입니다. 암에 걸린 게 아니고, 나쁜 앵커도 아니고 (아마도…), 더구나 방송을 떠나는 것 역시 아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뉴스는 기자들이 만드는 것이고 앵커는 그걸 소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앵커가 스스로 빛나려고 욕심내면 뉴스가 빛 바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8시 뉴스를 맡고 나서 넥타이도 가급적 어둡거나 무채색인 걸로 골라 매왔습니다. 다만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그날 그날 뉴스에 소개한 중요한 가치에 대해 좀 더 강조해보려는 욕심을 냈던 건 인정합니다. 그 가치들 가운데 가장 반복적으로 힘을 줬던 게 소통과 배려, 그리고 다양성이었습니다.

 

 

어제 뉴스 보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SBS가 뽑은 2014년의 단어는 ‘분노’ 였습니다. 분노 앞에는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논리보다 소통이 우선인 시댑니다. 저는 정부와 정치권이, 또는 대립하는 개인과 집단이 자기 주장의 날만 세우지 말고 소통부터 하기를 바랐습니다.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쏟아내기 전에 먼저 상대방과 친구가 되면 그 뒤엔 무슨 말을 해도 “그래 친구니까 맞는 말 일거야”라고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보육시설 아이들 한끼 밥값이 또래 초등학생 급식비의 반토막 수준이라던 뉴스 기억나시는지요. 시민단체가 아우성쳤더니 정부가 달랑 100원 올려주기로 했는데 여야가 싸우느라 예산처리시한을 놓쳐서 그나마도 무산됐습니다. SBS 취재팀은 이 뉴스를 끝까지 추적했습니다. 그 아이들 건강검진을 받게 해서 열에 아홉 꼴로 빈혈이라는 사실도 파헤쳤습니다. 국회가 100원 올려주고 손 털려고 할 때 저희는 또 비판했습니다. 그제서야 아이들 밥과 찬이 그럭저럭 먹을 만 해졌습니다.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늘었습니다. 배려하는 세상에 한 걸음은 다가간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다양성은 조금 논쟁적인 가치였습니다. 경쟁 제일주의 사회, 내 밥그릇 챙기기도 버거운 분들 앞에서 다양성을 말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회식가면 “짜장면으로 통일”을 외치는 문화, 우리 대학 우리 기수 우리 지역 출신 아니면 끼워 주지 않는 문화는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래를 살아갈 경쟁력은 창의성뿐인데 창의성의 원천은 다양성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외국인 엄마를 둔 아이와 친하게 지내면 그 집 가서 외국 음식도 맛보고 외국어도 몇 마디 배울 수 있을 텐데 다문화 가정 아이라고 왕따 시키는 게 말이 되냐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반론도 많았지만 더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뉴스를 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건 지인이거나 가까운 취재원이었던 분들을 특정해서 비판해야 했던 경우였습니다. 제가 대단히 정의로워서 사사로운 인연에 흔들리지 않았던 게 아닙니다. 해야 할 말을 안하고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갔다가 시청자들 질책을 받으면 정신이 번쩍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경찰조직의 비리를 꼬집고 난 다음 날 한 경찰관의 아내가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박봉에 위험까지 감수하며 국민에 봉사하고 가족들 먹여 살리는 남편이 고맙고 미안합니다. 그런 사람이 왜 조직 일부의 잘못 때문에 고개도 못 들고 다녀야 하나요?’ 제 말 한마디에 애꿎은 이들이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철없는 앵커가 흥분해서 뜻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소란만 피운 경우가 잦았습니다. 반성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이 주신 사랑은 한 가슴에 안기 무거웠습니다. 그동안 제가 받아온 사랑은 사실 밤낮으로 현장을 뛰면서 진실을 찾아 헤매온 모든 SBS 뉴스 구성원들 몫입니다. 그동안 SBS 8 뉴스가 야단 맞을 게 있었다면 그건 제 몫으로 짊어지겠습니다. 실향민의 아들이 ‘종북 앵커’라는 기상천외한 욕까지 들어 봤는데 애정 담긴 질책이야 주시면 주실 수록 고마울 겁니다. 

 

 

자 이제 마지막 클로징 얘깁니다. 저는 언젠가 찾아올 오늘을 상상하면서 오래 전 결심한 게 하나 있습니다. “피터 제닝스처럼 온 몸으로 감동을 선사할 자신이 없으면 무슨 대단한 일 하고 떠나는 것처럼 호들갑 떨지 말자. 떠나는 자리에 촌스럽게 흔적을 남기지 말자.” 그런데 막상 그 날을 맞고 보니 이런 결심 자체가 호사(豪奢)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결심대로 갑니다. 마지막 클로징도 지나간 매일들과 마찬가지로 2014년 12월31일 오늘의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슬슬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저녁때 시간되시면 ‘본방 사수’도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8시에 뵙겠습니다.







유머

오늘도 웃자 하하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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