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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한참동안 춤을 췄어. 나도 그 순간만큼은 백마를 잊고 내 앞에 서 있는 수정이에게 집중했어. 새삼 수정이의 몸매가 내 눈에 아주 자세하게 들어와 박혔어. 취향이야 다들 다르겠지만 나는 어깨 넓은 여자를 좋아해. 뭐 운동선수처럼 삼각근 어깨빵이 두툼한거 말고, 쇄골이 옆으로 길게 뻗어 각이 잡혀 있는 어깨 말이야. 수정이 어깨가 그랬어. 그리고 아래로 떨어지는 곡선은 허리께에서 급격하게 수축한 뒤 다시 골반을 타고 팽창하는 모래시계와도 같았지. 어깨 앞뒤로 쏟아져 내려와 있는 검은 머리칼이 수정이가 몸을 흔들때마다 어지럽게 흩날렸어. 우리는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격하게 춤을 춰댔어. 한참을 그러고 있다보니 디제이도 쉬어가는 타이밍을 갖더라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나는 이제 자리에 앉아볼까 하고 한걸음 뒤로 물러났어.


"안아줘"


수정이가 갑자기 웃으며 두 팔을 벌렸어. 이건 무슨 뜻일까? 안아달라니.. 너 지금 내가 하숙집 친한 변태 오빠라고 존나 방심하냐..아니면 진짜 나를 좋아하는거였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어. 하지만 이럴 때 장고를 때리는 건 사나이 도리가 아니지. 생각은 수정이를 끌어안고 나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니까 말야. 나는 수정이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허리를 당겨 꽉 끌어안았어. 수정이는 두 팔을 내 목에 감고 내게 밀착한 상태로 매달렸어.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나는 그저 온몸으로 내게 딱 붙어 있는 수정이의 몸을 느꼈어. 이상하게도 나는 발기 하지 않았어. 단지 긴 춤으로 인해 할딱거리는 수정이 숨결이 귓가에 느껴졌고, 내게 안겨 있는 수정이의 몸이 마치 아귀가 딱 맞는 부품이 조립되는 것처럼 편안하게 잘 들어맞는다는 느낌이 들었어.


얼마간 그러고 우리는 가만히 서있었어. 음악은 계속 흘러나왔지만 블루스 리듬에 맞춰 흔든다거나 하는 것도 없이 그저 껴안은 석상처럼 그러고 있었어. 춤 때문인지, 첫 포옹의 긴장감때문인지 두근거렸던 가슴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뒤에 나는 수정이의 허리를 잡고 살짝 거리를 벌렸어. 과연 이 포옹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친한 오빠 동생의 심리적 거리는 이제 완전히 파괴되어버린 건지 혼란스러웠어.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수정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어.


수정이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인다거나 하는 일 없이 빤히 내 두눈을 쳐다보고 있었어. 나와 키 차이가 10cm 정도 나기 때문에 살짝 올려다 보고 있는거지. 그리고 나는 1초 정도 살짝 눈을 감았다 바로 떴어. 그 후 내 눈에 들어온 건 눈을 감고 있는 수정이의 얼굴이었어. 내가 눈을 감는 걸 먼저 본 수정이가 뒤따라 눈을 감은거지. 난 망설일 것 없이 수정이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댔어. 모래바닥에 두 발을 심고 있던 수정이가 그대로 체중을 내 쪽으로 실었어. 나는 그걸 받아 안은 채 조금은 격하게 입맞춤을 했어. 별빛 아래의 격정이 윗입술 아랫입술..그리고 혀..다시 입술 전체를 휘감고 지나갔어. 그제서야 나는 수정이가 충분히 알아챌 수 있을만큼 발기해버렸지. 이제 우리는 하숙집 오빠 동생 사이는 아니게 되어버린 거야.


다시 얼굴을 떼어놓고 수정이를 바라봤어. 알듯 모를듯한 웃음을 띤채 수정이는 내 눈동자를 응시했어. 너무 이뻐보여서 지금 당장이라도 모래바닥에 쓰러뜨린 채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왔어. 수정이가 장난스레 물었어.


"누가 키스하래?"


"니 눈이, 니 입술이. 내가 잘못 읽었나?"


"안아달라고만 했잖아."


"그럼 다시 가져가"


나는 아까보단 더 거칠게 수정이를 끌어당겨 키스를 했어. 침범벅이 될만큼 서로의 입술을 부비고 또 부볐어. 해변가 바 모래사장에 서서 이러고 있는 건 당연히 나도 수정이도 처음이지. 하지만 누가 볼까 걱정 따윈 전혀 들지도 않았어. 그 순간 그 해변에는 나와 수정이 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키스를 했어. 내가 엉덩이를 생각하며, 슬쩍 보이는 겨드랑이를 떠올리며 자위를 했던 여자가 지금 내 품에 안겨 나와 키스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에 난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어. 내 나이트라이프 같은 건 그 순간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야.


다시 약간 거리를 벌려 얼굴을 마주 댄 수정이는 조금 전보다는 수줍어 하는 표정이었어. 


"오빠. 나 좋아했지?"


"어?? 응.."


"언제부터?"


"한 5분 전부터"


"뭐야? 장난치지 말고"


"ㅎㅎ 당연히 좋아했지. 내색을 안했을 뿐이야"


난 내 자신도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모를 달콤한 말들을 쏟아냈어. 이런 일이 없었다면 난 수정이가 한국을 돌아갈 때까지 오빠 동생사이를 유지할 수 있었을 거야. 물론 수정이가 아름답긴 했지만 그녀를 향한 내 욕정은 내 앞에서 걷는 수정이의 엉덩이를 5분 정도 바라보고, 그걸  다시 떠올리며 10분 동안 자위하는 걸로 충분히 인내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어. 하지만 두번의 포옹과 키스.. 그 격정이 우리 둘을 휘감고 지나가 버린 후에 나는 마치 처음 만난 순간부터 수정이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착각하게 되는거지. 그건 수정이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였을거라고 믿어. 사람의 몸은 그처럼 무서운거니까.


술자리를 정리한 우리는 그대로 숙소쪽으로 걸어가며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어. 억지로 끌려 온 보라카이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겐 신혼여행지 비슷하게 되어버린거야. 수정이는 손을 잡고, 어깨를 끌어안고, 허리를 두르고, 볼과 이마에 뽀뽀를 하는 나를 그냥 내버려 두었어. 이제 나의 여자라는 신호를 확실하게 보낸거지. 


처음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남녀가 다들 그러하듯,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 서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언제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생겨났는지, 확신은 언제 들었는지 등등에 대해 캐물었어. 그처럼 달콤한 취조와 답변이 또 있을까. 우리는 하하 호호 웃으며 이미 숙소를 지났는데도 계속 걸었어. 가끔씩 바닷물이 들이치는 쪽으로 가서 발목을 적시고, 그게 또 뭐가 우스운지 깔깔대며 웃고 다리가 아플만큼 걸었어. 또 백사장에 그대로 털퍼덕 앉아 마치 서로의 입술이 맛있어 미치겠다는 듯이 키스를 했어. 


"사랑해"


"나도 사랑해 오빠"


긴 외로움에 지쳐서 나를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거 아니냐? 는 찌질한 물음이 가슴 속 한구석에 맴돌았지만 그걸 입밖으로 꺼낼만큼 나는 멍청하진 않았어. 그냥 그 순간 가슴이 시키는 대로, 착각일지 모르지만 엄청나게 강렬한 감정들을 나는 그대로 쏟아낸거지. 그리고 그 모든걸 정당화할만큼 수정이는 아름다웠어.


"이제 들어갈까?"


"들어가면 린다언니 자고 있을텐데.."


"그렇겠지. 근데 그게 무슨 뜻이야?"


"아니 그냥"


"좀 더 있다 들어가자고?"


"응...ㅋㅋ"


학원에서 그리 도도하던 수정이는 이제 그냥 귀여운 여자애가 되어 있었어. 단지 어깨선과 압도적인 골반만이 자신이 성숙한 여성임을 꿋꿋하게 표현하고 있었지. 나와 수정이 린다 누나는 침대가 3개 있는 같은 방을 썼어. 그리고 나머지 부부연수생이 다른 방을 썼고 말야. 그래서 지금 수정이와 방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이 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 젠장.. 이렇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그대로 달고 잠을 자야한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갑갑해져왔어.


굳이 일찍 숙소로 돌아갈 필요가 없어진 우린 보라카이 해변을 다 돌아보겠다는 기세로 걸어다녔어.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쉬고, 쉴 때는 수정이의 종아리와 허벅지를 주무르고 약간의 음심을 충족했지. 내 꽃이는 저 수평선 끝까지 펼칠 기세로 발기했어. 


새벽이 다 돼서야 우린 숙소에 돌아왔어. 린다누나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샤워를 하고 소리 죽여 웃으며 서로를 끌어안았어. 1인용 침대가 3개 있는 방이었기에 같이 자기엔 힘들었어. 내가 수정이를 침대에 눕히고 입을 맞춰준 뒤 내 침대에 누우면 수정이가 다시 내 침대로 와서 굿나잇키스를 되돌려주고 킥킥거렸어.


"얼른 자 내일 돌아가야 하잖아"


"보고 싶어서 그래"


"나도 보고싶어. 큰침대 있으면 좋겠다 정말"


그러길 수차례 반복하다 수정이는 잠이 들었어. 나는 불꺼진 방에서 달빛별빛을 조명 삼아 손깍지 베개를 한 뒤 생각에 잠겼어.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정이랑은 언제 같이 잘 까. 학원으로 돌아가면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격정이 물러간 자리를 이런 저런 걱정들이 채웠어. 그리고 내가 잊고 있던 한가지가 갑자기 떠올랐어. 해먹에 누워있던 백마 그녀였어. 수정이와 사귀게 된건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녀를 꼭 보고 싶은데 나는 내일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샌 뒤 짐을 챙기는 일행들을 상대로 나는 선언했어. 수정이에게는 미칠 듯이 미안한 상황이지만, 그리고 백마 그녀가 아직 머물고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어.


"먼저들 가세요. 저는 좀 더 머물다 가겠습니다."


"응 오빠 언니...먼저 가. 나도 좀 더 있다 갈게"


어..이런 시발..수정이는 내 신호를 잘못 해석한거였어. 하긴 어제 밤에 사귀게 된 여자를 그대로 돌려보내고 먹을지 못먹을지 모르는 백마 때문에 혼자 남겠다고 하는 미친놈이 있을 리 없잖아. 수정이는 당연히 우리 둘만 남아 조금의 시간을 더 보내자는 걸로 해석한거야.


"어~! 뭐야 니네~~어제 무슨일 있었던 거야? 니네 사귀지!!"


"헤헤..."


수정이는 귀여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어.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수정이를 일행과 함께 돌려보내기는 불가능하지. 제기랄!! 젠장!! 하는 마음과, 그럼 오늘 수정이를ㅎㅎ...하는 설렘이 교차했어. 뭐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수정이와 나는 5일을 더 보라카이에 머물게 됐어. 학원에도 일행들이 미리 말해줄 테니 귀찮은 신고식 없이 모두가 우리 커플 탄생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컴백할 수 있게 된거지.


일행들을 돌려보내고, 우리 둘은 퀸사이즈 베드 하나가 있는 방갈로로 숙소를 옮겼어. 짐을 던지자 마자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침대에 몸을 던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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