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꿀잠 들었는데 천둥번개 소리에 깨버렸다.
천둥 번개소리와 함께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나니
마치 데자뷰처럼 군생활의 좆같은 기억이 확 살아나는게 아니겠노??
그래서 그 썰을 풀어보려해.
난 자주포 조종수로 군복무를 했어.
포병으로 근무한 게이들은 잘 알겠지만
포병부대는 대부분 산 속에 쳐박혀 있다.
그리고 포상(포가 위치한 진지)과 막사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고
그 막사와 포상을 잇는 길은 교통호로 연결이 되어 있지.
상황이 붙으면 막사나 식당이나 어디에 있든간에
존나게 뛰어나가서
저 교통호를 통해 포까지 달려나가는거야.
우리부대 교통호는 대충 이랬어.
우리는 교통호 벽이 돌로 되어있었지만
사진에는 뭐 이상한 슬레이트를 댄 것 같네.
암튼
포상근처는 사격시야 확보를 위해서 수목작업을 해야했기 때문에
나무가 얼마 없었지만
교통호는 나무가 우거진 숲이었지.
평소에 자주포는 신속한 사격을 위해
포상의 무개호 (지붕이 없는 부분)에 위치해 있어.
연평도 포격 때 사진인데
저 포가 위치한 곳이 무개호야.
포탄이 떨어지는 와중에 상체 내밀고 있는 부사수 클라스 ㄷㄷ하노.
이 사진이 자주포가 무개호에 쏘옥하고 들어간 사진이야.
위 사진도 연평도 포격 때 사진인데
포신이 앞으로 많이 나온거 보니
포가 안으로 좀 덜 들어간 듯.
암튼
특별히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낙뢰가 치지 않으면
포는 조금 전 사진에서 보다시피 항상 무개호에 위치하고 있어.
근데 너희들도 알다시피 참 군대날씨란게
변화무쌍하고 개 좆같잖아??
아무런 예보가 없다가도 갑자기 새벽에 비가 오고 낙뢰가 치면
당직근무자 또는 불침번이 각 포의 조종수들을 깨워서
산으로 올려보네.
가서 포 집어넣으라고...
아까 사진으로도 보여줬다시피
포상은 지붕이 있는 유개호와 지붕이 없는 무개호로 구성되어 있는데
번개나 비가 오면 장비를 보호해야하기 때문에
밤 중에라도 올라가서 포를 유개호로 집어넣어야 한다.
문제는 웬만해선 조종수와 gps 같은 사격통제장치 조작을 위해
포병 한 명을 같이. 그니까 각 포반 당 두명 씩 올려보내는게
원칙인데.
우리는 조종수한테 그 조작법까지 미리 숙지를 시켜서
조종수 혼자 올라가서 포를 집어넣고 다시 장비 세팅하고
다시 비내리고 천둥번개치는 산 길을 혼자 내려와야 했다는거야.
가서
1. 장비 전원 켜고, 엔진 전원 켜고, 시동 켜고
2. 사격 통제장치 전원 켜고
3. 딸딸이 선 감고
4. 포 이동 시키고
5. 시동 끄고 엔진 전원 끄고
6. 사격 통제장치 세팅될 때까지
포 안에 앉아서 멍하니 기다리다가
(약 5분 정도 가만히 포 안에 앉아 있어야 함)
7. 장비 전원 끄고
8. 엔진에 물 안들어가게 카바 씌우고 등등
아무리 빨리해도 10분은
포 여기저길 뛰어다니면서 지랄을 해야한다.
일단 벼락치는 새벽.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할 때
각 포 새끼조종수들을 깨우면.
존나 좆같아도 표정관리해가면서
딸딸이 찍찍 끌면서 교통호로 걸어간다.
대충 그 때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이래.
교통호를 따라 걷고 있을 때
벼락이 번쩍하면
주위에 나무들 그림자들이 순간 덮칠 듯 달려드는 것만 같아.
사진은 좀 밝게 나왔는데
실제로 비오는 밤에 좆같은 ㄱ자 렌턴 하나 들고 땅에만 비춰가면서
산길을 걷다보면 진짜 존나 무섭더라.
뭐 대충 이런 분위기??
그렇게 걷다보면 저 멀리 희미하게 유개호 입구가 보인다.
시발 누가 찍은 사진인지 느낌 존나 비슷하게 나왔다.
물론 사진처럼 저런 빛은 없고
ㄱ자 렌턴으로 비추면 대충 저런 각진 터널 같은 윤곽이 드러나지.
저 터널(유개호)를 지나면 아까 봤던 무개호가 나오는데
거기 있는 자주포를 저 터널로 집어넣는거야.
포를 일단 집어넣고
사격 통제장치가 다시 세팅될 때까지 포 안에 혼자 앉아있는데
저런 터널 안에서 혼자 앉아 있는거야.
그동안
포상과 포를 때리는 빗소리.
천둥소리.
탄약고 철문을 때리며 흐르는 빗소리 등등
불빛 하나 없는 산 속에 혼자 앉아서 그 지랄 하고 있자니
지금 생각해보면 가혹행위가 따로 없었지 싶다.
시발 다른 포 새끼 조종수 휴가라도 가면
내가 다른 포까지 가서 저 짓 해야함 ㅠ
근데 그땐 당연한줄로만 알고 있었지 ㅋㅋ
첨에 시동켤 때
엔진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 ㅅㅂ ㅋㅋㅋ
내가 시동 켜고 내가 막 놀라고 지랄 ㅋㅋㅋ
나중에 짬 차서 내가 당직 슬 때는
새끼 조종수들 올라가면 같이 가주기도 하고
애들 깨우는 대신 내가 그냥 올라가서 포 집어넣기도 하곤 했는데
그 공포는 쉽게 적응이 되지는 않더라.
안그래도 귀신 많다고 소문난 동네였고
귀신 봤다는 부대원들도 워낙 많았었거든.
(그 사람들 말로는 우리부대에 상주하는 귀신이 있다더라. 처녀귀신 하나와 꼬마귀신 하나)
다행히 난 귀신 소리만 듣고 보진 못했는데
봤으면 그 자리에서 지렸을 듯.
암튼 벼락치는 소리에 깬김에
생각나서 한번 글 싸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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