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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만화

그게 벌써 12년전이네... 아오 씨밤;

12년 전의 나는 수능을 치고 나서 매일 매일 방바닥을 뒹굴고 있었지. 담임한테는 대입 논술 학원 다닌다고 뻥치고

학교도 제끼고 그냥 퍼질러 있기만 했어. 간간히 디아나 돌리면서 시간 죽이고 있었지.

그 당시에도 네이트온이 있긴했지만 어쩐지 우리 동네는 ㅅㅇㅋㄹ과 ㅅㅇ메신저 타키가 대세 였지. 

하루종일 멍때리다가 ㅅㅇㅋㄹ 들어가서 기집애 낚아보고 그러는게 일상이었어.

어느날... 평소처럼 대충 라면으로 끼니 때우고 ㅅㅇ에서 챗질을 하는데 어떤 여자애랑 말이 좀 잘 통하는 거야.

인사하고 이것저것 신상 털면서 얘기하는데... 나이는 열 다섯이고, 지금 집 나와서 고시원에서 지낸다네? 

딱히 뭐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ㅈㄱㅁㄴ이라는 개념도 생소할때라, 

대체 뭘로 끼니를 때우는 지 잠시 궁금했지만 아무튼. 

나도 할 일 없고 너도 할 일 없으니 만나서 놀자고 신나게 야부리를 텄지. 이 아이도 오케이 하더라. 밥이나 사달라고.

아싸! 하면서 부리나케 옷을 입고 시내 쪽으로 향했어. 그 당시에 여친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 조금 켕기긴 했지만... 뭐...


약속장소에서 두리번 거리고 있자니 진짜 앳되 보이는 애가 서성거리고 있더라고. 어깨 까지 오는 단발머리에 청바지 입고

위에는 하얀 패딩인가 뭔가를 입고 있었는데... 씨발 12년이나 지나니 이제는 가물가물하다ㅠㅠ

아무튼, 쟤다 혹은 쟤 였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다가가서 말을 걸었지.

"혹시 ㅅㅇㅋㄹ..."

"아, 오빠야?"

그 당시엔 아직 어려서 그런가 오빠라는 말을 듣고도 그냥 무덤덤... 서로 뻘쭘하니 쳐다만 보다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던 것 같다.

"밥 먹자. 뭐 먹을래?"

"나 고기 먹고 싶은데..."

"고기?"

시발 낮 2시에 만나서 고기 먹자는 애도 첨 봤... 근데 참 얼마나 굶주렸으면 저럴까 싶어서 좀 안쓰러운 마음도 들더라.

그래서 제안을 했지.

"야, 어차피 지금 여는 고깃집도 뻔하고 나 돈도 별로 없으니까, 그냥 우리집 가서 고기 구워먹을래?"

"여기서 멀어?"

"아니. 버스타고 한 10분?"

"그래, 그러자."

너무나 쉽게 따라오는 탓에 좀 당황스럽긴 했는데 뭐어... 하여튼, 그래서 버스를 타고 우리 동네로 와서

동네 마트에 가서 삼겹살 1근과 목살 1근을 샀지. 이것저것 야채랑. 집에 가서 부루스타를 켜고 불판을 올려놓으니 

두리번 거리던 그 아이가 그러더라. 

"오빠. 나 좀 찝찝한데 씻으면 안돼?"

...왠지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좀 어처구니 없는 애긴 하네; 대체 처음보는 남자애 집에 와서 어떻게 저리 당당했을까;;

"응, 어어 그래 씻어 씻어."

"기왕이면 나 옷도 좀 빨아서 말리면 안돼...? 쪼오기 드럼세탁기도 있는데."

"그...래라;"

"그럼 나 갈아입을 옷 좀 줘. 아무거나."

내 방에서 대충 집히는 대로 갖다준 티셔츠와 반바지를 건네받은 그 애는 욕실로 들어가더니 이내 샤워를 하더라.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어서 덮칠 생각도 안들었던 것 같다; 그냥 말없이 고기 셔틀처럼 고기 구울 준비만 했을뿐...

그 애가 다 씻고 나올즘엔 고기 구울 준비가 다 되어서 불판을 데우고 있었어. 머리에 수건을 쓴 채로 나오자마자 

고기 앞에 털썩 앉아서 우와 고기다 우와 그러는 애를 보니 웃음만 나더라ㅋㅋㅋ

고기가 익기 무섭고 낼름낼름 주워먹더라; 2근 중에 1근반을 처먹은듯...배를 두드리며 쇼파에 털썩 눕더니, 나를 보면서 또 그러더라.

"오빠. 우리 비디오 빌려볼래?"

"비디오?"

"응, 나 보고 싶은거 있어. 가자가자!"

어... 요새는 모르겠지만 말야. 그 12년 전에는 CD도 아니고 DVD도 아니고... 비디오 테이프로 영화를 빌려봤어. 그랬었어;

아파트 상가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같이 비디오를 빌려왔지. 난 딱히 뭐 보고 싶은건 없어서 냅뒀더니 영애누나랑 이정재가 나온

[선물]을 빌리더라고. 비디오를 빌려와서 쇼파에 같이 앉아서 보는데 내 옆에 앉아서 폭 기대서 보더라고. 

그 당시엔 지금하고는 내가 많이 직관적이라서... 바로 서버렸어; 그렇다고 뭐 어쨌다는 건 아니고;

비디오를 다 볼즘엔 내 다리를 베고 누워선 훌쩍 훌쩍 거리더라고. 시간은 벌써 5시... 부모님이야 그때 장사를 하고 계셔서

밤 10시쯤에야 들어오시니 별 걱정은 안됐지만, 겨울해가 짧아서 벌써 집이 어둑어둑 하더라고. 

영화가 다 끝나니 누워있던 그 애는 나를 올려보더니 그러더라.

"오빠. 나 있지 졸린데... 오빠 방에서 좀 자고가도 돼?"

"어... 뭐 그래."

"문 잠그고 잘거니까 들어오면 안돼?"

"알았어 알았어;"

많이 졸린지 비척비척 일어나더니 내 방에 들어가기 전에 나를 한 번 돌아보고는 방문을 닫더라. 그리고 톡 하고 문잠그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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