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군대 전역하고 복학하기 전, 한 반년 정도를 임시직으로 일한 적이 있다.
일은 스펙 없고 대가리 가벼운 어린 막장들도 쉽게 할 수 있는 텔레마케팅이었다.
인풋이 거지 같은 비정규직이라, 직원 수준도 급 낮은 서민들, 그렇고 그런 못배운 집 자식들이었음 .
하루는 사무실에서 교외(잡풀 많고 급수 낮은 도심천)로 날잡아 야유회를 갔는데,
돗자리 깔고 동석한 직원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양아치의 기본소양을 아는 년놈들이라 참이슬로 병나발을 그렇게 잘 불 수가 없더라.
물론 나는 꼴에 대학물 먹은 놈이라고, 생원처럼 꽁지 빼고 앉아있었지.
그렇게 몇 순배 술 돌고나서 술게임을 했는데, 이게 갈 수록 수위가 높아지더니 결국 왕게임까지 하더라고.
옛기억을 더듬건대, 아마 직원들 중에 상호 간에 교미의 기미가 있던( 썸 타는) 쌍쌍들이 진도 나갈 생각으로,
술 들어간 흐름을 타 저희끼리 물고 빨 만한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모가지에 쪼가리 내고, 먹던 얼음 혓바닥으로 옮겨 주는 등, 저희끼리 깔깔대며 신명나게 놀고있는데,
어차피 내가 낄 잔치도 아니었기에 난 그저 구경만 했다.
그러다 칼자루가 내 옆자리에 앉았던 좀 짓궂은(예절머리 없는) 남자 놈에게 돌아갔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내 맞은 편에 앉아있던 여직원을 겨냥하더니, 나한테 뽀뽀하라는 주문을 하더라.
그랬더니 희희낙낙대던 계집들의 잡담이 순식간에 끊어지더니, 한 20초쯤 정적이 흘렀던 거 같다.
지목당한 여자 애는 암말 없이 그냥 자리를 떠버리고 걔 주변에 앉았던 여자들도 따라서 일어나버렸다.
그리고 저희끼리 뭐라 구시렁대더니 야외 화장실 쪽으로 사라져버리더라.
그 와중에 지목당했던 여자는, 제가 앉았던 자리로 금새 다시 오더니 오른편에 앉았던 남직원한테 담배 한 까치를 빌리며
나를 흘겨 보고 가버렸는데, 그 눈초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마치...문틀에 발가락을 찧었을 때, 화를 삼키는 표정...
무고하며 어떻게 보면 피해자인 이에게...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살의를 품는...
그렇게 자리를 파하고 집에 올 때, 쓰레기는 나 혼자 치웠던 거 같다.
논 자리는 치워야 한다는 걸 모르는 아이들이었던 듯 싶다.
그래도 자차 갖고 왔던 놈 하나가 술병은 같이 수거했다가 지 차에 실어주더라.
폐병 줍는 노모가 계신 건지, 아니면 본인 장래사업으로 엿 바꿔먹으려 그랬는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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