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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만화


오빠 바지에 물 튄거 봐. 게다가 흰 바지야.


머리카락도 다 젖었네. 급하게 정돈한거 다 보여요 오빠.


팔짱을 낄까?


허리를 감쌀까?


팔짱이 좋겠지? 히히


그나저나, 오빠가 말하면서 손에 제스쳐가 많아진 거.. 나 알아듣기 쉽게하려고 그러는거 알아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오빠 말은 그런거 안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어요.






아 망했다. 오늘 새로산 바진데, 다 젖었네. 게다가 흙탕물이네.


그런데


한 우산 속에 같이 이렇게 있으니깐.. 좋은데?


내 팔로 은영이를 감싸안고 가면 둘다 비도 덜맞고


그냥 그 자세 자체도 참 좋을텐데 흐흐


내가 비 좀 더 맞더라도 은영이 원피스는 젖지 않게 해줘야지.




응?


은영이가 자기 왼팔로 내 오른팔을 감싼다.




"오빠"


"........"


"오빠"


"어? 어. 왜?"


"무슨생각해요?"


"아니 그냥 아무생각 안하는데"


"거짓말하지 마요. 얼굴 빨개졌는데"


"그..그건 더워서 그런거야."


"이렇게 시원한데?"


"몰라 몰라. 그러지 마. ㅠㅠ"




차분한 목소리로 저런 말 하니까


더 끌리네.




"오빠. 뭐 먹고 싶어요?"


"나? 난 다 잘먹어. 너가 먹고 싶은 걸 골라 봐."


"오빠. 그럼 우리 다른 데로 갈래요?"


"그럴까? 어디로 갈래?"


"오빠. 여자들이 이렇게 말할 걸 대비해서 미리 생각해 둔 곳 없어요?"




여자.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친구들은 많았다.


하지만, 멀리서 그냥 좋아할 뿐. 다가가지는 않았다.


괜히 고백했다가 바라볼 수도 없게 될 것 같으니깐..


어쩌면 아까 동환이랑 나랑은 비슷한 마인드인 것 같다.


아, 이럴 때가 아닌데.


나 아는 데가 없는데..




"오빠. 솔직하게 없죠?"


"......응"


"그럼 우리 가로수길 갈래요?"


"압구정?"


"네! 정문 앞에서 버스타면 되요. 나 먹고싶은게 있어요."




가로수길?


나 바지 사서 돈 별로 안남았는데, 큰일났다.


밥만 먹는게 아닐텐데..


그래. 일단 화장실로 가자.





"은영아. 나 잠깐만 화장실 갔다 올게. 여기 가만히 있어."


"애도 아닌데 그게 뭐에요. 히히"




"동환아. 나다."


"형.  이시간에 왜 전화했어요? 여자랑 같이 있는거 아니에요?"


"맞아. 근데, 부탁이있어서"


"뭔데요?"


"야. 얘가 가로수길 가자는데, 아까 내가 너랑 바지사러 가서 돈 많이 안남아서.. 5만원만 내 계좌로 부쳐주라."


"형. 너무해요. 누군지도 안알려주고 대뜸 전화해서 돈빌려달라그러네."


"미안해. 내가 다음주에 줄게."


"계좌번호 문자로 빨리 보내요. ATM기 가서 보내줄게요. 나중에 수수료도 줘야해요."


"알았어. 야 너무 고맙다."


"근데 형 친구 많잖아요."


"많은 얘기를 할 시간이 없다. 그냥 지금 내 사정을 가장 잘 아는건 너라서 그래. 끊을게. 계좌 문자로 보낼게."







은영이가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있다.


우와.. 근데 진짜 예쁘다.


얼굴도 주먹만한게, 화장도 진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피부도 하얗고


입술 앞으로 조금 내밀고 있는게


이제 봤는데 립스틱 색깔 이쁘네.




"은영아."


"오빠. 곧 버스 온대요. 조금만 늦었으면 놓칠 뻔 했네요."


"립스틱 색깔 이쁘네?"





어? 오빠가 알아봤다.


핑크색 틴트 바르다가 이번에 오렌지 색으로 바꿨는데


의외로 센스있네?



"오빠. 그런데 이건 립스틱 아니고 틴트라고 하는거에요."


"틴트?"


"립스틱이 고체형이라면 틴트는 액체형으로 나온거에요. 근데 입술이 마른상태서 틴트 바르면 이상해져요.


근데 난 입술이 원래 촉촉해서 괜찮아요. 어때요? 색깔 예뻐요?"




이렇게 말하면서 은영이가 눈을 감고 입술을 쭈 ~ 내민다.


허............


이거 뽀뽀해달라는 표정이잖아.




"오빠 버스 와요."


"아. 그래. 응"



...............................................................................



"오빠 비 다 그쳤네요."



아쉽다.


팔짱 못끼겠네.



"그러네. 다행이다. 너 여기서 먹고싶은 거 있다면서? 그게 뭐야?"


"저 김밥이요."


"김밥?"


"가로수길에는 김밥 맛집 되게 많아요. 신기하죠? 나 귀 안들리는데도 많이 돌아다녀요. 친구들이랑요."




은영이를 보고 미소지을 수 밖에 없다.


내가 그 입장이라면 집에만 있었을지도 모른다.




'헉. 김밥이 무슨 한 줄에 3천원이 넘어? 4천원짜리도 있네.'


"오빠. 김밥 비싸죠? 근데 속이 꽉 찼어요. 저는 크림치즈 김밥 먹을래요. 오빠 한 줄 시키고 라볶이 하나 시켜서 같이 먹어요."


"난 그러면 저거 견과류 들은거."


"여기 크림 치즈 김밥 한 줄 하구요. 라볶이 하구요. 매콤 견과류 김밥 한 줄 주세요."


그녀가 카드를 내민다.


"어?  야. 내가 살게."


"내가 먹고싶어서 데려왔는데 내가 살거에요."


"....."





"오 ㅏ ~ 맛있겠따아아아~"


"잘먹을게 은영아."



음식보고 감탄만하다가 내 얼굴을 못 봤나보다.


내 얼굴을 보기를 기다린다.



"잘먹을게 은영아."


"네. 오빠 덕분에 저도 맛있는 거 먹네요."




이건 내가 흔히 김밥천당에서 먹었던 김밥이 아니다.



김밥천당에서 먹던 건 밥에 반찬싸먹는 기분이었다면



이 곳 김밥은 반찬 한가득에 쌀이 토핑되어있는 느낌?



근데 맛있네.






"오빠. 우리 .."


"은영아. 혹시 .."



어? 동시에 말해버렸다.



"너 먼저 말해봐."


"오빠 먼저 말해보세요."


"아니야. 너 먼저 말해봐."


"오빠. 우리 동아리 봉사활동 계획 없냐구 물어볼랬어요. 매번 방학 때 가는 농활 말구요. 이젠 오빠도 전역했으니깐


같이 가보고 싶어서요. 오빤 무슨 말 할라그랬어요?"


"난, 혹시 나 휴가나올 때마다 모임 있었을 때 너 왜 안나왔는지 알려줄 수 있나해서.. 그거 물어보려고 했어."


"언제 물어보나했는데, 조금 늦었네요 오빠."


"알려줄 수 있어?"


"사실, 내가 이런 것도 동아리 내에서 두명 정도만 알고있어요. 가끔 봉사활동을 가도 말 없이 묵묵하게 도울 수 있는 것만 도우고


당일 날 올라왔어요. 모임엔 제가 나가도 의사소통도 잘 안되구,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들켜버리게 되고, 그럼 그 사람들이


절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 뻔하니깐요. 그러면 소리가 들리지 않던 그 때로 돌아갈까봐서 그랬어요."


"아.. 그랬구나."


"가장 중요한건요."


?


"저는 말보다도 사람들과 문자나 메신저로 대화를 많이 해요. 그런데, 오빠랑 그렇게 대화하면서.."



잠깐 동안 은영이는 말이 없다.



"5년 전에 잊어버렸던 제 목소리가, 오빠라는 사람하고 대화하면서 다시 기억났어요.


제가 적고 있는 답글이 가슴속에서 제 목소리로 들렸어요. 오빠한테 보내는 그 답글을 읽으면서요."



아.. 괜한 걸 물어봤나.


그녀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린다.



"고마워요...."






아무것도 모르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김밥집에서 예쁜 여자친구한테 헤어지자고 말하고 울린.. 그런 나쁜 놈처럼 보일 듯 하다.




그녀의 큰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 뚝 떨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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