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으로 미니스커트를 입어 봤어요
- 송희경 집사
1978년 칠삭둥이로 태어난 저는 몸무게가 1.38kg에 불과했습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신생아 몸무게 중에서 가장 적은 체중이라고 하여 고려대 병원, 이화여대 병원, 세브란스 병원 등에서 연구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쌍둥이 언니는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났고, 저는 '선천성 경직성 뇌성마비'로 왼쪽 팔, 다리를 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저를 치료하시고자 유명하다는 병원과 의원을 찾아다니셨습니다. 가진 재산을 다 탕진할 정도로 저를 이곳 저곳 데리고 다니면서 치료해 보고자 백방으로 노력하셨습니다.
4cm나 짧았던 왼쪽 다리
부모님의 열성으로 어느 정도는 좋아질 수 있었지만 치료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왼쪽 다리는 오른쪽 다리보다 4cm 정도가 짧아서 걷느라 애쓰다 보니 척추가 휘어지고 골반이 뒤틀려지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하면 10% 정도는 성공 가능성이 있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한다고 해서 아예 수술을 포기하고 침과 뜸 등 민간요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한쪽이 짧은 다리로 뒤뚝뒤뚝 걷다 보면 여러 개의 대못을 박는것처럼 고통이 심해서 차라리 하반신이 없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밤이면 엄청난 고통과 싸우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자니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도 몸무게는 35kg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몸이 아픈 것보다도 마음의 응어리가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체육 시간이 되면 운동장 한쪽 귀퉁이나 스탠드에 앉아 열심히 뛰어다니는 친구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더 괴로운 것은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할 때였습니다.
"저기 다리병신, 절뚝발이가 지나간다."
"와하하 …"
짓궂은 남자 아이들은 절뚝거리며 걷는 제 모습을 흉내내며 놀리곤 했는데 그 때마다 저는 속이 상하고 창피하여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 버렸습니다.
"엄마, 나는 왜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되나요?"
놀림을 당하고 집에 돌아온 날이면 그렇지 않아도 애태우고 계신 엄마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저는 길이가 다른 다리를 감추기 위해 항상 바지를 입었고, 뒤틀린 골반을 가릴 수 있는 펑퍼짐한 박스 티를 입고 다녔습니다. 불편한 몸과 함께 제 마음은 상처로 얼룩져 가고 있었습니다.
자상하게 믿음을 심어 주시던 담임선생님의 인도로
그러던 1991년 어느 날,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담임이셨던 서정란 선생님이 저를 안타깝게 여기시고 믿음을 심어 주고자 애쓰셨습니다. 방과 후에 이재록 목사님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들에 대해 전해 주시면서 「엿새 동안의 만나」라는 책자를 통해 성령과 방언 은사에 대해, 그리고 믿음의 단계 등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늘 용기와 위로를 북돋아 주시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어느 새 '나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은 당시 출석하고 있던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고 금요일날 선생님께서 다니시던 교회의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날 이후 제 마음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알 수 없는 희망이 가득했습니다.
그 때부터 매주 금요일이면 부모님의 염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만민중앙교회의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버스와 전철을 두 번씩 갈아타야 했기에 두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제가 늦게 들어오는 것을 염려하시는 부모님의 반대로 교회에 못 가는 날이면 집에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며 기도했고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결국 응답을 받아 금요철야예배를 온전히 드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제 모습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민하고 날카롭던 성격이 무던해졌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다리의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때에 더 이상 제 키가 자랄 수 없다고 했는데 키도 점점 자랐습니다.
매년 열리는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를 통하여 암이나 결핵 등의 난치병이나 뇌성마비와 같은 장애까지도 치료받는 것을 보았기에 제 다리도 온전히 고침받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학생이었던 저는 학교 수업과 성회 시간이 겹쳐 자유롭게 참석할 수가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지금은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대학에 들어가면 꼭 부흥성회에 참석해서 치료받아야지!" 이렇게 스스로 위로할 뿐이었습니다.
1997년, 드디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저는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자 대학부 찬양팀 코러스에 입단하였습니다. 그러나 한쪽 다리가 짧아 장시간 서 있을 수 없었기에 맨 앞 의자에 앉아 찬양을 했습니다.
사정을 몰라 의아해하는 형제자매들에게 앞으로 부흥성회 때에 꼭 치료를 받아서 단에 서서 찬양을 하리라고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가장 먼저 치료받아 영광돌려야지"
1997년 2월 10일부터 3월 30일까지 열린 49일 작정 철야기도회에 참석하여 정성을 다해 기도를 했습니다. 작정 철야기도회가 끝나는 날 마련된 시상식에서 저는 추첨되어 상을 받으면서 이번 부흥성회 기간중에 꼭 치료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더욱 강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금식하고 기도하며 고대하던 「제 5회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가 5월에 열렸습니다. 저는 "이번 부흥성회 때 내가 가장 먼저 치료받아 첫번째로 간증해야지!" 하고 다짐하였습니다.
1997년 5월 6일, 오후 첫 환자집회 때에 강사님께서 단에서 환자 전체를 위해 기도해 주실 때 아픈 곳에 손을 얹고 "아멘, 아멘" 하며 믿음으로 기도받고 있는데 갑자기 허리가 파스를 붙인 것보다 더 시원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강사님께서는 수백 명의 환자들에게 일일이 안수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안수기도를 받기 전부터 '단 한 번의 기도로 치료받겠다'라는 확신이 왔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기도를 받을 때는 '다 나았으니 뛰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저는 치료받은 것을 확증하기 위해 신발을 벗어 버리고 땀으로 옷이 흠뻑 젖도록 껑충껑충 뛰었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왼쪽 다 리가 땅에 닿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양쪽 다리를 똑같이 구부리고 무릎을 꿇어도 몸이 기울어지지 않았으며 왼쪽 무릎이 부드럽게 구부려지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4cm나 짧았던 다리가 정상이 되고 키도 자라
그리하여 저는 이미 믿음을 고백하였던 대로 당시 성회 때 맨 처음으로 치료받아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제 다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4cm나 짧았던 다리가 길어져 정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휘었던 척추가 펴지면서 뒤틀린 골반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다리도 길어진 것입니다.
부흥성회가 끝나고 이재록 목사님을 뵙고 치료받았음을 간증하자 기뻐하시며 "키가 150cm를 넘었겠네요."라고 하시길래 저는 얼른 "아멘" 하고 믿음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정말로 집에 돌아와서 키를 재어 보니 부흥성회 전까지는 147cm이었던 키가 150cm가 조금 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선천성 경직성 뇌성마비'를 온전히 치료받은 저는 충만한 기쁨 속에 늘 간증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학교 다닐 때 교복이나 단복을 입은 것을 제외하고는 제 모습을 감추느라고 짧은 스커트는 한 번도 입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짧은 스커트도 마음껏 입고 다닙니다.
요즘은 캠퍼스와 병원을 다니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전하고 있습니다.
평생 아픔 속에 살아가야 할 저를 치료해 주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칠삭둥이로 태어난 저는 선천성 경직성 뇌성마비로 인해 척추가 15도 각도로 휘어져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골반까지 틀어진 채 어린 시절부터 왼쪽 다리가 땅에 닿지 않아 절뚝거렸습니다. 1997년 5월, 제5회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에 참석해 첫날 환자 집회 때 기도를 받는 순간, 마치 척추에 파스를 붙인 것처럼 시원했습니다. 이후 병원 진단 결과, 휘었던 척추가 펴지고 뒤틀린 골반이 정상으로 나타났습니다. 4cm나 짧았던 왼쪽 다리가 길어져 발뒤꿈치가 땅에 닿으니 편안하게 걷고 예쁘게 치마도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리쉬 신시아 (파키스탄 라호르 만민교회)
① 대장 폐쇄에 셀리악 질환까지 겹쳐 수술해도 소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신시아.
② 당회장 이재록 목사가 신시아 사진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③ 치료받은 후 가족과 함께한 신시아.
④ 건강하게 자란 신시아는 현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7살에 체중 11kg, 수술해도 소생 가능성이 희박했으나
1999년 6월 중순의 일이다. 무더운 여름날 밤, 7살 여자 아이(세리쉬 신시아)가 구토를 했다. 그녀의 아버지 윌슨 존 길 목사(라호르 만민교회 담임)가 기도해 주자 나아지는가 싶더니 설사로 이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되면서 대변의 색깔이 초록색을 띠었고 혈변이 나왔다. 급기야는 대변을 볼 수 없었다. 복부는 부어올랐고 그녀는 큰 고통을 호소했다.
급히 라시드병원으로 옮겨졌다. 여러 검사 결과, 대장 폐쇄에 셀리악 질환(보리 등에 함유된 단백질인 글루텐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소장을 손상시키는 유전질환)까지 겹쳐 극도로 위험한 상태였다. 의사는 수술하지 않으면 살 가망이 없다고 했다. 또한 몸무게가 11kg밖에 안 되는 심각한 상황이니 수술해도 생명이 위태롭다고 했다.
하지만 주님 안에서는 소망이 있었다. 윌슨 존 길 목사는 그 동안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아왔기에 '그분께 기도받으면 딸이 나으리라'는 믿음이 왔다.
이재록 목사님께 사진 위에 기도를 받고 3일 만에 퇴원하여
이에 죽어 가는 딸 신시아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큰 딸 마리아에게 주며 부탁했다. 때마침 마리아는 신앙을 키우고 한국어도 공부할 겸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있었다. 한국에 도착한 마리아는 동생 신시아의 사진을 들고 이재록 목사에게 갔다.
1999년 7월 23일, 한국시간으로 밤 10시 50분경의 일이다. 금요철야예배 직전에 기도를 받았는데 동일한 시간(파키스탄 현지는 7시 50분경, 당시 서머타임 적용)에 신시아가 급속히 치료되기 시작했다. 의사들도 놀라워했다.
급기야 한 달 넘도록 입원해 있으면서 죽음의 위기에 놓였던 그녀가 기도받은 지 3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할렐루야!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9월 9일, 마침 파키스탄 선교를 위해 온 대전만민교회 담임 교역자인 길태식 목사가 이재록 목사에게 기도받은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으로 다시 한 번 기도해 주니 신사아는 혼자서도 걸을 수 있게 됐다.
'기적의 소녀'라 불리는 신시아
그 후 그녀는 병원이나 약을 의존해 본 적 없이 건강하다. 신시아는 현지에서 '기적의 소녀'라 불린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백한다.
"신시아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후 우리 교회는 급속하게 부흥했습니다. 우리 가족과 성도들은 시공을 초월한 권능의 기도를 해 주신 당회장님께 감사해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 당회장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신시아는 가족과 성도들로부터 자신이 어떻게 치료받았는지 그 과정을 여러 번 들었다. 이것은 그녀의 신앙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은혜를 갚는 사람이 되고자 결심했고, 당회장 이재록 목사를 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릴 그날을 간절히 소망하며 지낸다.
그녀는 GCN(세계기독방송네트워크) 방송을 통해 이 목사의 설교와 간증, 찬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믿음을 키우고 있다. 특히, '십자가의 도'(구원의 도가 자세히 담긴 설교)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한때는 매우 내성적이었지만 이제는 예배 및 교회 행사 시 특송과 간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또한 '만민뉴스'를 즐겨보며 매일 기도를 쉬지 않는다고 한다.
하나님 권능의 역사를 전하는 의사가 되고자
신시아에게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확실한 비전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전하는 의사가 되는 것이다. 이 꿈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 2005년도에 WCDN(세계기독의사네트워크) 주최로 인도 첸나이에서 제2회 국제기독의학콘퍼런스가 열리기 전의 일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신시아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와 함께 이 콘퍼런스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무슬림이었던 담당 의사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이 사실을 안 신시아는 '의사가 되어 WCDN 콘퍼런스에서 수많은 의사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알리리라'고 다짐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녀는 국제 공통언어인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이제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또한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엘리트 대학(Defence Degree College for Women)에 입학해 의학을 전공하고 있다. 현재 예비 의과 2학년이다.
그녀는 고백한다. "제가 새 생명을 얻은 지 13년이 됐지만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제 믿음과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시는 당회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의사가 되어 하나님 권능의 역사를 전하는 산 증인이 되겠습니다."
신시아를 통해 하나님의 권능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길 소망하며 모든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린다.
- 송애미 집사
많은 성도에게 거봉 포도 간증으로 기억되고 있는 이정택 형제는 올해 스무 살이 됐다.
- 송애미 집사
"아가야! 왜 그래! 아가야!"
1996년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어느 초가을 오후, 아들 정택이가 태어난 지 약 2개월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시누이는 거봉 포도 한 알을 정택이의 입가에 대어 그 즙을 입술에 적셔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기가 옹알이를 하면서 포도알이 입 안으로 미끄러지듯이 쏙 들어가더니 순간 아기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도로 넘어가야 할 포도알이 그만 기도(氣道)로 흡입되고 만 것입니다.
거봉 포도알이 기도로 흡입되어
"언니! 언니! 정택이가 이상해요!"
황급히 부르는 시누이의 목소리에 놀라 허둥지둥 옆방에서 뛰어나와 보니 조금 전만 해도 잘 놀고 있던 아기가 당장 숨이 넘어갈 것같이 깔딱깔딱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랐지만 오직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재빨리 아기를 거꾸로 들고 등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포도알이 나오기는커녕 오히려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당황한 저와 시누이는 허겁지겁 아기를 들쳐업고 집 근처 H 병원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이라 전문의는 모두 퇴근하고 인턴과 레지던트만 근무하고 있었는데, 아기가 너무 심각한 상태라 받아 주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비교적 큰 병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아용 호흡기 확장 기구조차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으며, 빈 병실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다른 큰 병원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막막한 상황이었으나 이대로 아기를 죽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당시 제약회사에 근무하던 남편에게 급히 연락하여 자초지종을 설명하였습니다. 남편이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다행히 B 병원 중환자실에 아기를 입원시킬 수 있었습니다. 안도의 숨을 내쉰 것도 잠시, 검진 결과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포도알이 벌써 한쪽 폐에 들어갔기 때문에 피가 고여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다른 한쪽 폐가 비대해져 호흡이 곤란할 정도가 되었으니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속수무책으로 아기는 죽어만 가고
그 때 저희 부부는 이 상황을 잘 넘기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기는 상태가 호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의 망막이 말라 가면서 점점 의식을 잃어 가는데 담당 의사는 그저 속수무책이라고 할 뿐이었습니다.
새벽 6시가 되면서 급기야 산소마스크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였고 결국 호흡은 중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충격요법으로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였지만 이것도 잠시뿐, 채 30분을 버티지 못하고 심장이 또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어 병실 밖으로 나와 버렸습니다.
남편도 이를 보다 못해 B 병원 중환자실에 아기를 의사들에게 맡긴 채로 나와서 평소 알고 지내던 의사들과 직장 동료들을 수소문해 서울대병원, 중앙병원, 삼성의료원 등 우리나라에서 이름 있다는 병원은 다 찾아다녔습니다.
결국 다음 날 아침 9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삼성의료원에서 조건부로 입원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조건부란 다름 아닌 아기의 생사 여부에 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 당시는 너무나 절박한 상황에서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를 받아 주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지덕지할 뿐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기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각오로 삼성의료원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기가 입원해 있던 B 병원 소아과 과장은 다른 병원으로 옮겨 봐야 상태가 더욱 악화될 뿐이라고 하면서 아기를 이송시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삼성의료원으로 옮겼습니다. 응급처치를 하고 낮 12시가 훨씬 넘어서야 아기를 중환자실에 입원시킬 수 있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저희 부부와 면담을 하면서 아기의 심한 탈수현상으로 혈관을 찾지 못하여 주사를 놓을 수 없고, 너무 어려서 수술도 할 수 없으니 살 가망성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살 가망성이 없다니 어찌해야 좋을까
그 후 우여곡절 끝에 3시간 만에 혈관 세 개를 찾게 되었고, 링게르 주사를 놓을 수 있게 되자 의사들은 상태가 호전되면 기관지 내시경을 통해 폐 속을 보고 포도알을 뽑아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술방법 또한 50% 정도의 위험 부담이 있다면서 수술 여부를 결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기의 생사가 달려 있는 일이니 정말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참으로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안절부절 못하던 저희에게 시누이가 담대하게 말하기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음으로 기도를 받으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저희 부부는 반신반의했지만,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시누이의 말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시누이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전도사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전화 통화를 마친 시누이는 아기를 대신해서 믿음으로 「음성전화 사서함」을 통해 환자기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며 회개하고 금식하니
그런데 신기하게도 환자기도를 받고 난 후부터 불안감이 조금씩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에 도착한 전도사님은 아기가 있는 중환자실로 들어가 기도를 해 주고 나오시면서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지킴을 받지 못한 것이라며 이제부터라도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난 저희 부부는 회개와 감사의 눈물로 울음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시누이는 3일 금식을 하며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고, 저희 부부도 「음성전화 사서함」을 통해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으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 때부터 아기는 점점 생기를 되찾아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누이의 금식과 기도를 기뻐 받으시고 놀라운 치료의 역사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저희 부부는 점점 믿음이 생겨 더욱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러자 아기의 건강은 더욱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고 담당 의사들조차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하면서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3일 금식을 하고 있었는데, 이 금식이 끝날 무렵 담당 의사로부터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입원 1주일 만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기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명에 전혀 지장이 없는 상태로 회복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폐 속에 있던 포도씨까지도 녹이신 하나님
저희 부부는 아기가 퇴원한 후에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병원에서 가져온 약을 전혀 복용시키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건져 주신 하나님께서 온전히 치료해 주실 것을 믿고 오직 전능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의 행함을 기뻐하시고 신속하게 치료의 역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며칠 후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뇌에 이상이 있어 혹 산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던 아기가 뇌 검사 결과 정상으로 판명되었으며, 폐 속에 있던 포도씨까지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전능자 하나님께서는 폐 속에 있던 포도씨까지도 성령의 불로 녹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던 담당 의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만 갸우뚱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는 놀라운 사랑으로 저희 가정을 지키시고 참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후 저희 부부는 만민중앙교회에 등록하여 예배를 드리면서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직접 들으니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또한 성도들의 환하고 웃음 가득한 얼굴을 보며 다시 한번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아이를 통한 이 시험이 저희 부부에게는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귀한 계기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이제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 치료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이 저를 살려 주셨어요"
여해동 형제 (중1선교회)
제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합니다. 교통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쳐 많은 피를 흘려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지요.
수술 후 의식이 돌아왔을 때에 저는 눈물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엄마 말씀을 잘 안 듣고, 학원에 결석하며, 저녁예배 시간에는 제대로 예배를 드리지 않고 잤던 일 등 잘못한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제 신앙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누나가 MP3에 우리 교회 예능팀들의 찬양과 당회장님 설교를 담아주었습니다. 저는 매일 그것을 즐겨 들으며 많은 은혜를 받았고, 신앙이 자라났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를 대신해 당회장님께 기도를 몇 차례 받아주셨지요. 기도받을 때마다 몸이 좋아져 신속히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해진 저는 최근에 의사인 아빠를 따라 호주에서 열린 '국제 기독의학 콘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아빠가 27개국에서 참가한 220여 명의 의사들에게 저를 소개하셨고, 저는 영어로 간증했습니다. 그분들은 힘찬 박수로 저를 격려해 주셨지요. 정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이처럼 축복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저는 더욱 주님을 닮아 가며 치료해 주신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또한 당회장님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가기를 소망합니다.
"에이즈(AIDS)를 치료받았습니다-시공 초월한 권능의 기도로 "
레오폴드 성도 (미국 뉴욕인터내셔널 만민교회)
2009년 6월부터 급격히 몸이 쇠약해졌습니다. 기침이 잦고 통증과 함께 온몸에 피부 종양이 생겼지요. 저는 치료받고자 저명한 목회자들을 찾아가 기도를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뉴욕 브루클린 센트럴 병원에서 검진한 결과 '폐렴과 에이즈'였습니다. 병원에서 강한 약물로 치료를 했지만 증상은 더 악화되기만 했습니다.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지요.
저는 '하나님이라면 치료해 주실 수 있는데…' 하는 마음이 늘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재록 목사님이 생각났습니다. 2년 전, 친구의 어머니가 전해주신 페루와 뉴욕 연합대성회 DVD를 통해 이 목사님의 권능을 본 것이 떠오른 것입니다.
2009년 8월부터 만민중앙교회 홈페이지에 접속해 만민 TV를 시청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 말씀은 마치 제게 하시는 듯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경청했습니다.
특히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통해 시력과 청력이 회복되고 갖가지 질병이 치료되며, 휠체어에 앉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걷고 뛰는 등 놀라운 권능을 보면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소망이 커졌습니다. 또한 권능은 하나님께 속했기에(시 62:11) 분명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병원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이재록 목사님의 인터넷 설교를 듣고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았습니다. 점점 통증이 사라지며 몸이 호전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금식과 기도로 더욱 하나님께 매달렸고, 제 마음은 평안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2010년 10월 16일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새벽 5시경, 그날도 목사님의 기도를 받는데 온 방 안이 뜨거워졌습니다. 이어 제 몸은 뜨거웠고 땀에 흠뻑 젖었지요.
다음 날, 저는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모든 테스트 후 깜짝 놀랐습니다. 에이즈와 폐렴 증세가 깨끗하게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믿을 수 없다며 저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 재검받도록 했습니다. 그곳에서도 결과는 동일했지요. 할렐루야!
요즘 뉴욕인터내셔널 만민교회(담임 심제임스 목사)에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권능의 기도로 치료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확실한 증거!!!
저는 강원대학교 환경계획설계평가연구실 연구원입니다. 하루 일과 대부분을 모니터 앞에서 보내는 관계로 시력이 무척 좋지 않았습니다. 대학 강사인 제 아내 이영욱 집사 역시 시력 저하로 불편을 겪고 있었지요.
지난 4월, 희소식을 들었습니다. 6월에 세 차례에 걸쳐 당회장님께서 직접 특별 은사집회를 인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정확한 시력 측정을 위해 안과를 찾았습니다. 저는 시력검사표 10cm 앞에서도 가장 큰 글자가 흐리게 보일 정도였고, 아내는 양안 0.1이었습니다.
저희는 '특별 은사집회 때 꼭 치료받아야겠다'는 기대와 소망으로 한껏 부풀었습니다. 하루하루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썼습니다.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 앞에 정성을 내보였지요.
형님 부부(이관규 강원대 조경학과 부교수, 임수희 집사)는 불임으로 고통받다가 당회장님 기도를 받고 결혼 13년 만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기적 같은 하나님 권능을 보았기에 저희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1차 특별 은사집회가 열린 지난 6월 10일 저는 춘천에서, 아내는 강의를 마친 후 대구에서 서울 만민중앙교회로 달려왔습니다.
2부 시간, 당회장님께서 단에서 '환자를 위한 기도'를 해 주실 때였습니다. 순간 저와 아내는 눈이 뜨거워지는 현상을 체험했습니다. 치료받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즉시 안경을 벗고 확인했습니다.
"어! 뿌옇게 보이던 색들이 선명하게 보여요!" 아내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저 역시 단에 계신 당회장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어 개인 안수기도를 받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이번 특별 은사집회에는 한 주에 4천여 명의 환자가 등록을 했다고 합니다. 이날 시력 환자는 1,095번까지 기도를 받았습니다. 저희는 295, 296번이었지요. 안수기도를 받은 후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안경을 새로 맞출 때처럼 선명하고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까.
저희 부부는 간증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단에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간증자가 너무 많아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지요. 얼마나 시력이 좋아졌는지 특별 은사집회를 마치고 춘천까지 안경을 벗고 운전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6월 17일, 2차 특별 은사집회는 춘천만민교회에서 화상으로 동참했습니다. 토요일 아침 9시경 눈을 떴을 때 또 한 번 놀랐습니다. 그동안 형태만 보였던 벽시계가 분침까지 또렷이 보였고, 안구건조증 때문에 눈이 자주 충혈되는 증세도 사라졌습니다. 아내도 심한 난시로 인한 두통이 사라졌지요, 지금은 안경을 벗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리며,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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