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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만화

양구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하면서 하루하루 아스테이지와 씨름 하던 일병 말봉 때 이야기임

그 날도 아무 생각 없이 소대장님과 노가리 까면서 종이를 자르고 있었는데, 왼쪽 팔굼치가 갑자기 욱씬거리기 시작했어

처음엔 왼팔로 종이를 너무 쎄게 눌러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통증이 반복되니 뭔가 문제가 아닐까 싶었지

소대장님께 말씀을 드리니 마침 백두병원 갈 일이 있으니 같이 가자 하시더라고

시간이 좀 촉박해서 부랴부랴 환복 후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음

그 날 정형외과 군의관이 휴가인지라 내과 담당의가 내 증상을 듣고는 엑스레이를 한 번 찍어보자 했는데, 이 때 까진 아무 생각이 없었거든

사진을 찍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가니 군의관 표정이 심상치 않은거임

그리곤 종이를 하나 꺼내서 뭔가 영어로 줄줄이 쓰곤 나한테 건내주며 하는 말이

'아무래도 상급병원에 가야겠다.. 보고 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홍천에서 MRI 촬영해라..'

순간 각종 드라마에서 본 시한부 판정 내릴 때의 의사 얼굴이 떠올라서 계속 병명이 뭔지 물어봤지만 절대 말 할 수 없다고만 하는거야

너무 당황해서 여기가 군대라는 것도 무작정 캐물어보려 하니까 내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더라고

'여기 팔꿈치 쪽 뼈가 불룩 튀어나와 있지? 아무래도 종양같은데 일단은 별거 아닌 것 같으니까 빨리 MRI를 찍어봐라'

앞뒤가 안맞잖아; 별거 아닌데 병명은 왜 숨기고 빨리 MRI를 왜 찍어;;

하도 어이가 없는 나머지 진단서만 받아들고 바로 공중전화로 향해서 누나한테 전화를 걸었어

누나가 대학병원 ER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거든, 그래서 누나가 받자마자 자초지종을 말하고선 진단서에 적힌 영어를 읽어줬다

'누나, 나 병원에서 MRI찍으라면서 진단서를 줬는데 bone tumor 라고 적혀있거든? 이게 뭐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나가 너 어디냐고 휴가 나올 수 있냐면서 막 울기 시작하는거야

누나도 뭔지 설명을 안해주고 일단 빨리 나와서 검사를 받아보자라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함

ㅅㅂ 난 본 튜머가 뭔지도 모르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 난리 굿을 치루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지

전화를 끊고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서 네이버에 본 튜머가 뭔지 검색해봐라 했다

그러더니 친구는 니가 걸린거냐라고 되묻기만 하더라

내가 걸리던 니가 걸리던 빨리 뭔지나 알려달라니까 존나 긴 침묵 후에 하는 말이

'암이래.......'

말 듣는 순간 너무 얼탱이가 없어서 ㅈ1랄 하지 말라고 한 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웃음밖에 안나오더라

ㅅㅂ..ㅅㅂ... 21살에 암이라니 시이이이이이발...

중대에 도착해서 행보관님이 약은 받았냐고 물어보시길래 존나 공허한 표정으로 '암이라고 합니다...' 하니까 행보관님 담배 떨구심

중대장님께도 보고를 하니 일단 홍천(근처 상급병원) 예약 후에 MRI 찍고 휴가를 내자고 말하시더라고

난 일이 꼬이려면 원래 한 없이 꼬이는 더럽기 그지없는 운빨을 가지고 있는지라 홍천 예약을 서둘렀지만 2주 후에나 촬영을 할 수 있길래 2주일 후로 날짜를 잡았음

그 때 부터 지옥의 2주가 시작됐음

세상이 개쓰레기같고, 내가 이걸 해서 뭐하지ㅋㅋ 어차피 암인데ㅋㅋ 같은 자포자기식 생각이 계속 들더니, 일과 끝나면 하늘만 멍하니 쳐다보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중대장한테 자초지종을 들은 선후임들은 '아 저새기한테 뭔가 위로는 해야겠는데 무슨 말을 해야할까' 연구했는지

본인들도 지금 생각하면 이불을 찢어버릴 각종 개드립 또는 으리의 한 마디를 던지고선 어깨를 토닥거려줌

물론 미쳐가던 나한텐 씨알도 안먹혔다 선임이고 후임이고 그냥 배경이나 나무토막처럼 보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홍천에 가서 난생 처음 MRI 라는걸 찍어봤다

찍는 도중에도 머릿 속으론 ㅅㅂㅅㅂ 왜 나지? ㅅㅂ 따위의 생각만 들더라

촬영이 끝나고 군의관 호출이 왔다

별 일 아닐거라는 후임의 말은 흘려버리고, 도살장 끌려가는 소의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군의관이 하는 말이

'야, 이 진단서 써준 새ㄲ1 이름이 뭐냐?'

라고 하는거임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어 '천XX대위입니다' 라고 대답하니 군의관이 처웃으면서 욕을 하기 시작했는데

'지가 허준인 줄 아네ㅋㅋㅋ 이런 ㅅㅂㅅㄲ가 엑스레이만 보고 이따위 진단을 내려?ㅋㅋㅋ'

어리둥절잼

난 순간 분위기 파악이 안되서 모니터에 삿대질을 하며 '여기 이 부분, 동그랗게 나온 부분이 뭔가 있는거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하니

'그 뼈는 원래 튀어나온거고 병쉬나..' 라며 인체 모형을 꺼내서 보여주는데

모형도 골종양에 걸려있는지 나랑 똑같더라고

'ㅈㄹ말고 나가, 너 정상이다, 군의관 만나면 내가 죽여버린다고 전해라'

여기까지 듣고 나서야 내가 물 먹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안도감.....은 개뿔 분노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자대 복귀 버스 기다리면서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소리 존나 지름ㅋㅋ 너무 분하더라

중대 도착한 후에 선임들한테 발로 엉덩이 존나 까였다

그 뒤로 전역할 때 까지 어디 조금만 아프면 '암 걸린거 아님?ㅋㅋ' 소리 듣고

친구들한텐 지금까지 본튜머새끼라고 놀림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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