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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예금 지급 청구서 싸인 비교[위쪽은 위조 싸인, 아래쪽은 이 씨 싸인]


펀드매니저 김 모 씨가 고객 이 모 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위 문자메시지 내용대로 지난달 10일 오전, 이 모 씨는 SC제일은행 펀드매니저 김 모 씨를 만나기 위해 종로에 위치한 본점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이 씨는 가는 도중 김 씨에게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답이 없었습니다. 이번엔 전화를 걸었습니다.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었습니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 씨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사무실로 전화해서 김 씨를 만나려면 몇 층에 가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김XX 씨요? 지난주에 퇴사했는데요. 누구세요?"

이 씨는 그 순간 숨을 제대로 못 쉬었습니다. 길가에서 비틀거리면서 주저앉았습니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이 씨를 부축하고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이 씨는 전화를 끊고 난 직후부터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순간까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잠시 안정을 취한 후 다시 은행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이미 김 씨는 물론 김 씨가 관리하던 이 씨의 돈 3억 7천여만 원은 사라진 후였습니다.

■아들 금융 캠프까지 챙겨줬던 펀드매니저

이 씨가 김 씨를 처음 만난 건 2015년이었습니다. 이 씨는 30년 가까이 외국 생활을 했고, 남편도 외국인입니다. 아들에게 한국 문화와 정서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귀국했습니다. SC제일은행은 이 씨가 오랫동안 거래했던 주거래 은행이었습니다. 이 씨의 자산을 운용해주던 기존 펀드매니저가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2015년 11월 김 씨로 담당이 바뀌었습니다. 이 씨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특별한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담당이 바뀌었지만, 이 씨는 '원래 한국에선 이렇게 하나보다'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김 씨는 이 씨에게 극진했습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던 이 씨의 아들을 위해 싱가포르 금융 캠프도 적극적으로 알아봐 줬습니다. 공격적인 투자로 수천만 원 수익을 내준 적도 있습니다. 서툰 한국 생활에서 오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항상 조언과 위로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씨는 자연스레 김 씨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있지도 않은 채권 투자 권유…싸인도 위조?

그랬던 김 씨가 "특별한 상품을 찾았다"며 새로운 투자를 권유한 건 2017년 12월이었습니다. 미국 국채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이라며 5~17%에 달하는 고정이율이 적힌 상품소개서도 보여줬습니다. 이율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씨는 약 2억 8천만 원 상당을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상품은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채권이었습니다. 김 씨는 미국 국채채권에 투자하는 척하면서 이 씨 소유의 또 다른 계좌에 돈을 입금시켰습니다. 김 씨는 그 이후 이 씨 계좌에서 돈을 조금씩 인출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 씨가 이 씨 계좌에서 개인적으로 돈을 뺄 수 있었던 건 이 씨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펀드 환매를 직접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비밀번호를 요구한 적이 있었고, 이 씨는 김 씨를 믿고 알려줬습니다. 이 씨의 귀책도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씨의 싸인이 위조된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이 씨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기 위한 서류를 확인한 결과, 이 씨의 실제 싸인과 다르게 보이는 싸인이 있었습니다. 두 싸인을 비교하기 위해 필적감정을 맡겼습니다. 감정사의 결론은 두 싸인이 명확히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철자 끝을 꺾는 정도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김 씨는 환전용 돈을 가로채기도 했습니다. 이 씨가 환전을 위해 현금을 건네주면, 김 씨는 그 현금을 바로 환전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챙겼습니다. 그리고는 이 씨의 계좌에서 따로 돈을 인출해서 환전해주는 겁니다. 이런 방식 등으로 지난해 3월부터 9월까지 김 씨가 빼돌린 이 씨의 자산이 모두 3억 7천여만 원입니다.

■“사모님 바보세요? 한국 사람은 이렇게 안 당해요.”

이 씨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던 건 SC제일은행 측의 태도였습니다. 김 씨가 일했던 지점의 한 관계자는 오히려 이 씨를 타박했습니다. 일하는 사람에게 자꾸 전화하면 일 처리가 더 늦어진다고 나무라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야단을 치는 거예요. 너무 순진하지 않냐? 사모님 바보 아니냐? 한국 사람은 이렇게 안 당한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모든 일이 은행에서 이루어졌는데 어떻게 제가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겠어요? 제가 잘못한 건 은행을 믿은 거고, 은행 직원을 믿은 거예요. 내가 너무 속상하고 눈물을 흘리는데 제가 안타까워서 화를 내는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사건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이 씨는 김 씨에 대해 업무상 횡령과 사문서위조 혐의 등으로 고소했습니다. 안양 동안경찰서에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현재 베트남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김 씨는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경찰은 김 씨 주변 지인 등을 조사하고 있고, 체포영장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현지 경찰에 공조 요청을 할 계획입니다. 금융감독원도 진상 조사에 나섰습니다. 추가적인 피해 여부도 조사할 예정입니다.

SC제일은행 측은 처음엔 오히려 이 씨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대부분 현금 거래로 이뤄졌고, 서류상으로 별문제가 안 보인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자체 조사를 진행하면서 조금씩 전향적인 검토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이 씨를 타박했던 관계자의 초기 대응에 대해선 이 씨에게 사과했습니다.경찰이나 금감원의 조사 결과가 나오는 걸 토대로 보상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김 씨는 SC제일은행의 정규직 펀드매니저였고, 차장급 직원이었습니다. 국내 물정을 모르는 이 씨에겐 김 씨의 말이 곧 법이었습니다. 이 씨는 김 씨가 3년 넘게 자신에게 했던 말이 전부 거짓으로 느껴져서 너무 괴롭다고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건 이후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이 씨의 아들은 이미 프랑스로 돌아갔습니다. 이 씨도 이 사건이 해결되는 대로 프랑스에 가고자 합니다. 아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한국 사람들의 정서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30년 만에 돌아왔는데 불신과 상처만 안고 돌아갑니다.





kbs 이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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