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조국 사퇴하라" 촛불집회 - 23일 저녁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아크로광장에 모인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며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고려대·서울대서 촛불 집회]

방학중 '조직 동원' 없는 집회.. 高大선 피켓 400개 금방 동나
"촛불로 쌓아올린 세상 믿었는데 지난 권력과 별반 다르지 않아.. 수많은 의혹에도 사퇴 안해 분노.. 정부와 조국이 답할 차례" 주장

23일 해질 무렵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캠퍼스 중앙광장에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딸 조모(28)씨의 부정입학 의혹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학생들이었다. 조씨는 고교시절 단 2주간의 단국대 인턴 경험만으로 병리학 논문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이를 입시 자기소개서에 적어 2010년 '고대생'이 됐다.광장에 모인 600여명이 요구한 것은 조씨 입학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이었다. 손에 '명백한 진상 규명'이라고 적힌 피켓과 플래시를 켠 스마트폰을 손에 들었다. "진상 규명 촉구한다! 입학처는 각성하라" "2만 학우 지켜본다! 입학처는 명심하라" 등의 구호가 나왔다. 집회는 고려대 학생·교직원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개인 제안으로 시작됐고, 방학 기간 중 '조직 동원' 없이 진행됐다. 주최 측이 준비한 피켓 400장이 30여분 만에 동났다.

'보건정책관리학부 11학번'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이일희씨는 자유 발언에서 "같이 학교 다니던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멍하게 (만들었고), 노력이 헛되게 느껴졌다"고 했다. 재학생 윤모(25)씨는 본지에 "토익 공부를 하다가 너무 억울해서 뛰어나왔다. 논문 제1저자가 뭔지도 몰랐는데, 알아볼수록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고 했다. 고대 후문 게시판에는 '그래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철도공사 직원 대규모 직위 해제 사태에 대한 대학생들의 무관심을 비판해 큰 반향을 불러왔던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의 후속판 성격이었다. 이번 대자보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새벽 공기를 마시며 논문을 써내려가는 대학원생들이여, 도대체 당신은 고작 2주짜리 랩(연구실) 인턴은 왜 안 했느냐"고 했다. "촛불로 쌓아 올린 이 세상이 적어도 한 걸음쯤은 나아갔다고 믿었다" "(박근혜 정부) 권력이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고 적혔다.

학생들이 들고일어나자 그간 침묵하던 고대 총학생회가 가세, 입장문도 냈다. '조 후보자 딸의 부정입학과 장학금 관련 의혹은 많은 20대 청년·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촛불 집회는 같은 날 서울대에서도 열렸다. 관악캠퍼스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모인 학생 약 500여명(주최 측 추산)은 '폴리페서 물러나라' '조국이 부끄럽다' 등의 피켓을 들었다. '개구리'나 '가재' 가면을 쓴 이들도 보였다. '모두가 개천의 용(龍)이 될 수도, 될 필요도 없으며, 개구리·가재·붕어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과거 조 후보자 발언에 대한 풍자였다.

집회 주최자인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대학원생 홍진우씨는 "지금까지 드러난 수많은 의혹과 위선, 내로남불에 우리 모두 실망하고 전 국민이 경악했다"고 했다. 또 "(나는) 시간 쪼개 과외를 해도 생활비 조달이 어려워 대출도 받았다"며 "조 후보자는 장학금 지급 기준을 '성적'에서 '경제 상태'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한 자신이 부끄럽지 않으냐"고 했다.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인 조선해양공학과 김다민씨는 "정부와 조국 후보자가 우리들의 분노와 실망에 답할 차례"라고 했다.

의과대학원에 재학 중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그동안 익명으로 글을 올렸는데 무슨 자신감인지 이곳에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면서 "병원과 실험실을 오가며 자괴감, 상대적 박탈감, 실망감을 느꼈을 학생들이 꿈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졸업생도 일부 참가했다. 경영학과 졸업생 전모(29)씨는 "그동안의 발언과 너무 다른 조 교수의 이중적인 모습에 분노해 퇴근하자마자 곧바로 학교로 왔다"고 했다. 건축학과 졸업생 김모(28)씨는 "조국 후보자가 위법 소지가 있는 의혹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사퇴하지 않고 있는 것에 분노한다"고 했다.학생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특정 정치 세력에 이용되지 않도록 극도로 경계했다. 야당 국회의원이나 친박(親朴)·보수 단체 관계자의 출입을 막았고, 집회 내내 "정치나 정권, 정책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사전(事前) 약속과 달리 정치적 주장을 펼 경우 마이크를 끄겠다는 경고도 했다.





조선일보 안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