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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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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인 신립의 경기병대는 충격을 담당할 충격기병인 창기병이 전무한 경장 궁기병으로


궁기병으로 유명했던 몽골 조차도 전력의 5분의 2는 중기병으로 구성했던거 생각하면 심각하게 불균형한 편제였음


세조 이래 무과의 인사고과가 활만으로 개편되고 임진년 직전 "조선 팔도에 창쓰는 기예를 가진 이가 하나 없다"라는 말이 나왔던거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음.


신립의 경기병대는 각종 기록을 유추해 추정해보면 돌격사격인 '치사(馳射)'만을 벌이다 순차적인 조총사격에 녹아내린걸로 보임.


애초에 활의 사정거리 자체가 확실하게 적을 사살할수 있는 유효 사거리만 따지면 우리가 생각하는 초기 아퀴버스 라이플을 압도하는 압도적인 사거리는


줄어들수 밖에 없었고(조선 수군은 후에 총통-조총-활 순서로 방포했음) 궁기병의 마상 사격은 더더욱 줄어 사실상 조총 사거리와 


도찐개찐이나 마찬가지 였음.


한 가지 재미있는건 이때의 충격으로 조선군은 보병대를 조총으로 도배해 버리지만 훗날 부차 벌판에서의 사르후 전투에선 조선군이 일본군의 입장,


후금군이 조선군의 입장이 되어 정 반대의 입장에서 야전을 벌였지만 조선군은 창병등의 보조 병과 부재로 1차 사격만에 후금 기병에게 쓸려나가고


전멸 당했다는 점임..조선군의 기병 운용의 헛점과 부족함이 단적으로 들어나는 부분이자 보조할 병과의 부재가 또 들어나서 망해버림


어쨌거나 신립의 기병대를 제외하면 사실상 잡병이나 다름 없었던 유명 무실한 중앙군 보병 밖에 없었던 신립이 질적, 숫적, 사기 모두에서 압도당한


상황에서 배수진을 친 건 어쩔수 없었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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