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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 영화 평

수파마리오 2022.12.10 22:08 조회 수 : 2534

영화 연평해전이 세간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경제난 속에 사회의 보수화가 급격히 이뤄지는 와중에 개봉된 이 영화는 특정인 죽이기를 통한 대중의 탈출구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며, 이어지는 죽이기 대상은 좌파 정치권입니다. 즉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영화를 통해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셈입니다.
 

'서해교전'이 '연평해전'으로 바뀐 '안보장사 정치'에 이용된 문화



연평 ‘매카시’
    
영화 ‘연평해전’이 4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흥행 순항 중이다. 영화광이나 매니아라 칭하기엔 내공이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나름 영화 애호가라 자신하는 나는, 단언컨대 이 영화를 공짜표가 생기더라도 절대로 볼 마음이 없다. 세상은 넓고, 봐야할 영화는 많고 인생은 유한하기에, 수준과 의도가 뻔한 연평해전 따위 영화에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딸내미가 남자 친구와 이 영화를 보고 왔단다. 딸내미는 영화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나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잘못된 교전 수칙으로 인해 우리 장병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한일 월드컵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문제를 의도적으로 축소했다. 대통령은 장병들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는 커녕, 일본으로 가서 월드컵 경기를 관전했다....... 대충 이런 메시지를 영화는 전하는 것 같다.
    
진보 논객 진중권은 심형래의 영화 ‘디 워’가 800만 흥행몰이를 했을 때, 무지 몽매한 대중 현상이라는 논지의 발언을 해서 세간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아직까지 나는 영화 연평해전과 관련하여 이른바 입진보들의 따끔하면서도 까칠한 평가를 들어보지 못했다. 진중권이 보기에도 이 영화는 최소한 심형래 영화보다는 완성도 높다는 의미일까?
    
입진보들의 암묵적 동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연평해전은 화제의 외화 ‘터미네이터’를 제치고 박스 오피스 1위를 탈환했다. 학교, 지자체, 군부대, 기업 등의 단체관람이 줄을 잇는 상황이라 당분간 영화는 순풍에 돛단 듯 흥행성적을 쌓아갈 것 같다. 그리고 무능한 정부와 비겁한 대통령, 그들이 조장한 불합리한 구도 속에서 조국 영해를 지키다가 장렬히 산화한 꽃다운 젊음이 주는 처연한 슬픔이라는 메시지는 부단히 대중의 뇌리에 주입되어질 것이다.
    
나는 연평해전에서 산화한 젊은 군인들을, 그들의 고귀한 희생과 그 의미를 비난하거나 폄하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이 아무리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라고 해도, 그러한 감정이 사실 왜곡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커리지 언더 파이어’(1996년 작, 맥 라이언 주연)이라는 헐리웃 전쟁 영화가 있다. 어느 여군 조종사의 영웅담 속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헬기 기장이었던 여군 중위가 추락당해 고립된 적진에서 승무원 부하들을 모두 구하고 장렬히 전사했다는 평범한 영웅담. 그녀에게 최고 훈장 추서하고 그녀의 희생 덕분에 목숨건진 부하들은 착하게 군인의 소임을 다하면 모두가 헤피엔딩인 그런 스토리.
    
하지만 진실은 전혀 달랐다. 부하들은 처음부터 여자인 상관을 무시하고 깔봤다. 추락 직후 적진 한복판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그들은 상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반항하다 급기야 오발사고로 그녀에게 총상까지 입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부하들 모두가 구출되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자신의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본대로 복귀하면 너희는 군법재판을 받아야 할 거다.’ 이 한마디에 부하들은 자기 한 몸 던져 부하들을 살려내려는 그녀를 의도적으로 죽도록 방치했다.
    
결국 진실이 하나하나 파헤쳐지며 그녀 덕분에 목숨을 구했던 부하들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마약 중독자가 되거나,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영웅의 죽음이라는 대가치고는 정말 썰렁한 결말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상부의 압력을 무시하고 진실을 낱낱이 파헤친다.
    
번쩍이는 훈장과 계급장 달고 거들먹거리는 것 밖에 모르는 저질 군인들 사고방식으로는 영웅의 죽음은 반드시 아름다운 결과를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그런 사고방식은 반드시 ‘진실의 가공’을 낳게 된다. 하지만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의 메시지는 전혀 다르다. 진실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것이며, 그것이 어떤 모습이더라도 영웅의 죽음을 더럽힐 수 없다는 거다. 오히려 진실을 감추려는 인간의 추한 몸부림이 영웅의 죽음을 더럽힐 뿐.
    
2002년 6월말 서해 북방한계선에서 벌어진 남북간 해상 무력충돌을 대한민국 국군은 처음에 ‘서해교전’이라 불렀다. 군사적 관점에서 ‘해전’이 아니었다는 거다. 그러나 2008년 갑자기 명칭이 ‘제 2차 연평해전’으로 바뀐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 당시 한나라당에 의해 ‘패전’이라고 집중 난타를 당했던 전투의 결과도 한나라당 집권 이후 갑자기‘화려한 승리’로 탈바꿈 한다.
    
‘선제 사격을 금지한 교전규칙 때문에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했다.’ 영화는 이런 메시지를 고수하는 모양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선제 사격 금지라는 교전규칙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정전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군사적 행동규칙이 근거였다.
    
북한의 선제공격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 이유는 참수리 고속정과 북한 선박의 ‘거리’에 있었다. 고속정의 직속상관이라 할 해군본부와 2함대 사령관의 최초 지시는 ‘북측 함정과 3-4Km 거리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그 정도 거리면 사격 통제장치가 열악한 북한 함정에서 발사한 포탄이 명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이 진행되면서 합동참모본부에서 해군 지휘체계를 건너 뛰어 지근거리에서 차단 기동을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 결과 참수리와 북측 함정의 거리는 150미터로 좁혀진다. 150미터 거리라면 사격통제 장치 따위는 필요 없다 직접 조준해서 발사해도 맞는 거리니까. 그 이후 상황은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는 것과 같다.
    
북측의 첫발이 발사된 직후, 우리 장병들은 다른 어느 나라 군대의 장병들과 비교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영웅적인 투혼을 발휘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군인의 소임에 충실했으며, 초지일관 무인으로서의 명예를 지켜냈다.
 
이게 진실이다. 하지만 보다 더 적나라한 진실은 꽃다운 젊은이들을 잘못된 상황, 잘못된 싸움터로 내몰아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들이 다름 아닌 군의 최고 지휘관들, 지금 영화 연평해전을 통해 안보 마케팅에 눈이 뒤집힌 인간들이라는 거다.
    
영화 연평해전에 대한 영화 전문가의 평가 중 눈에 띄는 하나가 있다. 바로 영화잡지 씨네 21 김현수 기자의 한줄 논평이다 "130분 과정 예비군 안보교육". 사실 영화 연평해전에 대해 영화적 완성도롤 거론하는 내용을 찾기 힘들다. 그저 젊은이들의 죽음이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 월드컵에 열광했던 우리가 좀 부끄럽다. 북측에 화끈하게 대응하지 못한 김대중 정권은 정말 나쁘다.... 이런 감성적이면서도 안보를 빙자한 진영논리적 비난 일색일 뿐이다.
    
이런 가운데 자타가 공인하는 야권의 맹주이자 부동의 No,1 대선후보 문재인이 지난 6월 30일에 남긴 영화 감상평은 영화를 무기로 한 수구보수의 21세기 판 매카시 즘 공세에 대처하는 자칭 진보진영의 자화상을 처연하게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남긴 감상평을 통해 영화 내용과는 다른 국민의 정부의 이성적이고 차분한 대응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영화가 감동적이었고, 이런 영화가 만들어져 정말 다행이라는 수구보수를 향한 립서비스를 빠뜨리지 않았다.
    
쉽게 말해 문재인은 영화 연평해전을 모두가 봐야하는 ‘좋은 영화’로 선전해준 셈이다. 교전 자체가 아닌, 교전을 잉태한 거대한 상황, 그리고 교전 전후 정부의 대처에 대해서는 영화의 메시지와 다른 소리를 하면서도, 영화를 이념 논쟁으로 몰고가는 세력이 안타깝다고 하면서도 영화 연평해전은 좋은 영화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명백한 이율배반이다.
    
딸내미가 남자친구와 연평해전을 보고 왔다고 했을 때, 나는 ‘그런 영화 볼 바에는 차라리  화끈한 에로영화 한편을 보는 게 심신 건강에 이로울 걸 그랬다.’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누군가 충무공 이순신이 위대하다며 그의 위대성을 보여주자며, 이순신이 잠수함을 몰고 왜적을 몰살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 쓰레기 영화를 본 내가 영화 정말 개판이라고 욕한다면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격미달인가?
    
마찬가지다. 연평해전에서 산화한 군인들은 진정 영웅이 맞다. 하지만 그들을 영화를 빙자하여 애국마케팅, 안보마케팅의 소재로 삼아 21세기 판 매카시 공세의 도구로 전락시킨다면? 정녕 그들 영혼은 편안한 안식과 위안을 찾을 수 있을까?
    
이 땅의 입진보들은 오늘도 지역주의 정치를 욕하며, 재벌의 횡포를 질타하며, 사회전반에 만연한 갑질의 만행을 개탄한다, 하지만 어느 날엔가 진보 정당 하나가 이적단체로 규정되며 와해된 그 순간부터, 그 누구도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이슈가 하나 생겼다. 바로 빨갱이 사냥이다.
    
영화 연평해전, 아니, 연평 “매카시”는 그리하여 천만 관객 신화를 향하여 신나게 폭주할 것이다. 러닝 타임 2시간짜리 ‘배달의 기수’ 한국 영화 역사를 새로 쓰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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