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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1919년 4월 13일, 3·1운동 정신을 계승해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
나라의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수립 선포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역사적 의의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제정한 국가 기념일입니다.

3·1 운동이 우리 민족의 최대 염원인 독립으로 곧장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우리도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를 갖게 했으며
임시 정부 수립 운동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연해주에서는 대한 광복군 정부(1914)가 조직되었습니다.
그러나 임시 정부 수립 운동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3·1 운동 이후였습니다.

3·1 운동이 한창 전개되고 있을 무렵에 13도 대표는 독립 운동을 체계적으로 해나가기 위하여
정부 수립이 필요하다고 결의하여 한성 정부를 만들었고,
중국 상하이에서는 대한 민국 임시 정부가, 연해주에서는 대한 국민 의회가 조직되었습니다.

그러나 전 국민의 열망인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여러 정부를 두기보다
하나의 정부로 통합하여 운영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민족 지도자들은 수차례의 회의를 거쳐 세 정부를 상하이에 있는 대한 민국 임시 정부로 통합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정부를 국내에 두지 않고 상하이에 두었을까요?
그것은 상하이는 일제의 영향력이 덜 미쳤을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공사관이 있어서 외교 활동을 전개하기에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민족 지도자들은 이 점을 고려하여 대한 민국 임시 정부를 상하이에 두었던 것입니다.
단일화된 대한 민국 임시 정부는 자유 민주주의와 공화정을 기본으로 한 국가 체제를 갖추고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민족 독립 운동의 선두에 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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