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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미국이 영국(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 (1774 ~1783)

1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이 탄생합니다.



1. 보스턴 차 사건



북미 대륙에서 치러진 ‘프렌치 - 인디언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구멍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북미 식민지 주민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기에 이릅니다.



그로 인해, 분노한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 본국으로부터 수송된 ‘차(Tea) 342박스’를

그대로 바다로 투척해버리죠.(보스턴 차 사건) 그러자 이에 분노한 영국 의회의 본심이 나옵니다



영국 의회 “이 xx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안되겠다! 니들 한번 죽어봐라..”



영국 의회는 이 사건을 일으켰던 메사추세츠 식민지를 본보기로 하여 ‘집회 금지령’를 내리고,

바다에 가라앉은 차들을 모두 변상할 때까지 보스턴 항구를 폐쇄시켰어요.



식민지 주민 "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쏘냐!!"



식민지 주민들은 얼마나 분노했으면, 영국 의회가 시행한 법을 '참을 수 없는 법'이라 지칭했죠

그들은 이 법에 대하여 끝까지 잘 참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까요?



2. 새로운 변화의 바람 : 반역인가? 당연한 것인가?



그랬다면, 현재의 미국이 존재하지 않았겠죠. 결론적으로 이 법은 미국의 독립을 더 부추기는 결과만 불러옵니다.



이 법으로 보스턴 항구가 폐쇄되자, 관련된 일자리가 사라지고 식량배급에 큰 차질이 생겼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던 식민지 주민들은 더 이상 영국이 정답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죠



"고인 물은 썩는 법.."

가장 큰 변화는, 북미 대륙에 있는 13개 영국 식민지들이 뭉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식민지 주민 "주사위는 던져졌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도 우리 목소리를 내자!!"



그러자 1774년, 식민지 중 하나였던 필라델피아에서 '제 1차 대륙회의'가 열렸습니다

12개 식민지 의회에서 총 56명의 대표가 참석했어요.



이 첫 회의에 참가한 인물 중에는, 후일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조지 워싱턴, 존 애덤스, 벤자민 프랭클린 등'의 굵직한 위인들이 모두 참석했죠.



1차 대륙회의는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의 통제에서 벗어나

'미국 독립'을 실현하는 길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이 회의를 통해 식민지 대표단들은 그동안 해왔던 영국 본토와의 교류를 전면 금지하자는 결정을 내리고,

독립의 필요성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눴죠.



식민지 주민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2개에 불과했어요



"영국과 싸워서 독립을 하자!"



"그래도 독립은 너무하잖아.. 일단 전쟁은 피하자!"



식민지 주민들은 영국의회가 추진하고 있는 세금 정책에 분노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오랜 역사를 지닌 영국인이란 사실을 잊지 않고 영국 왕실의 역사와 관습을 부정하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식민지 주민들의 마음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사건 때문에 말이죠.



당시 영국 식민지에서 작가로 활동했던 토머스 페인이 쓴

<상식>이란 책이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 사이에서 대히트를 쳤던 것인데요.


▣ 토마스 페인의 <상식>은 도대체 어떤 내용인가?

토머스 페인은 미국의 독립이 지극히 순리적이고 상식적인 이유를 요목조목 열거했습니다


1. 영국의 군주제는 옳지 않다.

2. 영국이 부과하는 세금과 제약은 식민지의 경제에 큰 손해를 입힌다.


이 외에 1개의 논리가 더 있는데, 바로 이 3번 항목이 식민지 주민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습니다



"5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작은 섬나라가 이 커다란 대륙을 지배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즉, 이 책은 자신들의 나라인 '영국'의 통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저 시대의 식민지 지도자들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이 책이 히트를 치자, 아메리카 대륙은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거기다가, 정치 운동가였던 '패트릭 헨리'의 명연설도 식민지 주민들의 독립 의지를 확고히 다지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지금은 매우 중요한 때입니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자유인이 되느냐 혹은 노예가 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자유가 아니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겐 300만의 인구가 있으며, 영국보다 훨씬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패트릭 헨리의 주장은 간단하고도 명료했습니다.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에게 쫄 필요가 없고, 맞서 싸우자는 것이었죠.



안 그래도 독립의 꽃이 모락모락 피고나고 있던 식민지 13개 주에서, 패트릭 헨리의 연설을 들은 시민들 사이엔



"어라? 듣고 보니 그렇네..+ㅁ+ 우리 뭉칩시다!!!"

이런 여론이 형성되죠.



한편 그 시각, 이러한 변화를 눈치 챈 영국 의회에서도

본토에서 식민지로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여 이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3. 미국 독립전쟁(1775 ~ 1783) : 천조국의 탄생



1775년 4월 메사추세츠.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대(미니트맨) 사이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집니다



누가 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이 총성이 미국의 독립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첫 전투로 인해, 양측 군대는 수백 명의 사망자가 속출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대서양을 건너 유럽까지 빠르게 전해지죠.



당시, 영국(대영제국)은 적이 많은 나라였습니다.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프랑스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 독립군'을 지원하기 시작하죠.



프랑스 曰 : "ㅋㅋ 얼레리 꼴레리! 잘 됐다~ 이 거지같은 영국 놈들..!"



당시, 독립군 민병대의 총사령관은 '조지 워싱턴'이었습니다

그러나 민병대는 제대로 된 훈련하나 받지 못한 오합지졸 군대였죠



양측은 1775년부터 1781년까지 박 터지게 싸움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식민지 대표들은 공식적으로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며 미국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죠.



이러한 식민지 주민의 독립선언문은 영국 입장에서 명백한 '반역 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영국인들은 기가 차고 분할 따름이었죠. 

그래서 영국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의 독립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결국, 독립전쟁에서 영국 정규군을 물리치고 승리합니다

어떻게 오합지졸의 독립군이 대영제국의 군대를 이길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독립군이 영국군의 '약점'을 매우 잘 이용했기 때문이죠. 영국의 약점은 바로 '거리'이었습니다



영국군은 본토와 무려 5,000km 이상 떨어진 전쟁터에서 싸움을 벌여야 했죠

그 시대엔 지금처럼 전투기나 이지스함, 미사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전쟁 보급과 수송 등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프랑스군은 거의 대놓고 독립군을 지원해줬죠.

독립군이 전쟁 동안 사용한 화약의 90%를 프랑스가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1781년 10월 17일, 요크 타운 전투에서 영국군의 찰스 콘월리스 소장은 미국에게 항복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그 뒤로 작은 전투가 조금 더 있었지만, 사실상 이 전쟁의 승리자는 미국 독립군이었죠



1783년 9월 3일, 미국과 영국 대표가 '파리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독립전쟁은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미국은 독립국으로 인정받게 되죠



미국의 독립은 '필그림 파더스'가 영국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지 163년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이 건국일을 독립전쟁 승리 후 파리 조약에 서명하고 인정받은 시점(1783년)이 아닌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시점(1776년)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독립선언문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현 미국의 민주주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그 당시에도 과연 '모든 사람'이 평등했을지, 우리는 잠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776년, 토머스 제퍼슨이 초안을 작성한 독립선언문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는 분명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구절을 낭독했죠.



'모든 사람' 속에는 과연 여성이나 인디언, 흑인도 포함되어 있었을까요?

토머스 제퍼슨이 쓴 독립선언문 초안에는 노예 제도를 비난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13개 식민지 중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에 있는 식민지 대표들은

이 구절을 독립선언문에서 삭제하지 않으면 서명하지 않겠다고 일침을 놓았죠



토머스 제퍼슨 역시 이론상으로는 노예 제도에 반대하면서도,

현 미국의 사회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예 제도가 불가피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지 7년이 지나 미국의 독립이 확정된 시점에도,

노예 제도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했죠



결국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 노예 제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대로 후대에 떠 넘겼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로 인해, 미국은 후일 '남북 전쟁'을 겪어야 했죠.


천조국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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