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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괴짜투수 디지 딘(Dizzy Dean)

봉귀주 2015.02.27 14:07 조회 수 : 1571


 
디지 딘(Dizzy Dean)은 내셔널리그의 '마지막 30승 투수'인 제이 해너 딘(전 세인트루이스)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활약한 투수이다.
 
16살 때에 학교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 학교를 그만두고 하사관으로 입대한다. (나이를 속이고..)
디지(dizzy: 현기증나는)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 때이고,
나이를 포함한 여러가지 거짓말이 들통나 2년후 18세에 결국 쫓겨났다.
 
그의 등번호 17번은 영구 결번이 될 정도로 전설적인 투수였지만,
빅리그 역사상 첫손에 꼽히는 기인이었고, 기자들의 질문에는 거의 동문서답으로 응하기 일쑤였다.
 
그의 괴짜스러운 행각을 살펴보자.
 
 
1. 1934년 월드시리즈 2차전을 앞두고 카디널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입장식을 갖고 양팀선수를 차례로 소개하는 순서가 있었다.
그러나, 경기장에 있어야 할 디지 딘은
관중석에 올라가 응원밴드석으로 가더니 튜바를 냅다 불어대고 있었다.
 
2. 1934년 시즌 막바지에 세인트루이스는 부르클린 다저스와 더블헤더를 치르게 되었다.
디지 딘은 제1경기를 안타 3개만 허용하고 완봉승을 거두었는데,
같은 팀 소속이었던 디지 딘의 동생인 폴은 제2경기에서 폭발적인 투구로 안타없이 노히트노런 승리를 따낸다.
두번째 경기가 끝나자 형인 디지 딘은 동생을 꾸짖었다.
"왜 노히트노런이 될 것이라고 얘기를 하지 않았어? 나도 마음먹고 던졌으면 퍼펙트인데.."
 
 
3. 1935년 환자 위문차 어느 병원을 방문한 딘은 불구아동병동에 입원한 어린이들에게
"만루상황에서 뉴욕 자이언츠의 감독겸 선수 빌 테리를 삼진으로 잡아내마" 고 약속한다.
이튿날 공교롭게도 카디널스가 1점차로 앞서고 있는 가운데
게임종반에 자이언츠가 2사1,2루의 역전 찬스를 잡게 되었다.
다음 타자는 타율이 0.187밖에 안되는 물방망이 휴이 크리츠였지만,
디지 딘은 강타자 테리와의 대결을 자청하면서 그를 고의4구로 걸러보내
만루 위기를 만들며 감독의 속을 새까맣게 태운다.
그리고나서 딘은 2사만루의 위기상황에서 강타자 테리를 삼진으로 잡고 어린이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4. 1936년에 디지 딘은 포수사인을 일일히 들여다보기가 너무 지겹다며 포수 오그로 도우스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사인 없이도 던질 수 있어. 내일 시범을 보여주지"
이튿날 그는 게임을 앞두고 상대팀은 보스턴 브레이브스의 빌 매케니 감독을 찾아갔다.
"캐처들은 뭐 별로 대단한 존재도 아니면서 잘한다는 대접을 받고 있어요.
난 오늘 오로지 직구만 던질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사인은 아무 것도 없어요."
천기누설! 그러나 디지 딘은 그렇게 하고도 그날 브레이브스를 4안타로 농락하며 완봉승을 거두었다.
 
 
5. 1937년, 자기 과신에 차 있던 디지 딘은 보스턴 브레이브스의 외야수 빈스 디마지오 정도는
매타석 삼진으로 잡을 수 있다고 동료들에게 큰소리쳤다.
다른 선수들은 말도 안된다며 콧방구를 끼었지만, 디지 딘은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 경기를 시작하자 디마지오는 3번째 타석까지 매번 삼진을 당했다.
4번째 마지막 타석에서 디마지오는 포수 머리위로 높이 뜨는 파울플라이를 쳤다.
그러자, 디지 딘은 오그로도우스키 포수를 향해 "놓쳐! 놓쳐! 잡으면 큰일나!"하고 외쳤다.
깜짝 놀란 포수는 공을 놓쳤고, 디지 딘은 불같은 강속구를 꽂아 기어이 삼진을 낚아챘다.
 
 
6. 1937년 5월 19일. 게임을 앞두고 조지 바 심판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디지 딘)와
뉴욕 자이언츠(칼 허벨)의 선발투수들을 불러놓고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리그 사무국에서 보크 적용을 강화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그래서 오늘부터 엄격하게 볼테니 그리 알아라.
세트포지션에서는 양손을 모아 반드시 일시정지했다가 던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크다."
머리는 끄떡끄떡하면서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린 디지 딘은 게임 초반에 두번이나 그런 식의
보크를 저질렀지만 바 심판은 그냥 눈감아줬다. 그렇지만 카디널스 포수 미키 오웬에게는
"딘이 다시 한번만 더 그랬다가는 보크를 잡아내겠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딘은 콧방귀를 뀌었다. 1-0으로 잘 끌고가던 딘은 6회초 선두 버기스 화이트 헤드에게
안타를 맞고 보내기번트로 1사 2루의 위기에 몰렸다.다음 타자 딕 바텔은 유격수(리오 듀로셔)
머리위로 뜨는 내야플라이를 쳤으나 그 순간, 바 구심은 "보크!"라고 외치면서 화이트헤드는 3루로 가고
바텔은 다시 타석으로 들어오라고 교통정리를 했다.
딘이 투구동작 도중 일단멈춤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화가 치민 디지 딘은 글러브를 내동댕이치고 심판에게 대들었다.
그는 동료 선수들과 합세해서 바 구심을 둘러싸고 땅을 걷어차 심판바지에다 흙을 묻히면서 마구 성질을 부렸다.
"나 안해!"
 
딘은 옷갖 짓을 해도 심판이 끄떡 않자 덕아웃으로 퇴각했다가 감독이 진땀을 흘리며 달래는 통에
마지못해 다시 마운드에 섰다.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딘은 한복판에다 대고 직구만 내리 꽂아넣다가
집중4안타를 두들겨맞고 3점을 뺏긴 후에야 그 이닝을 마칠 수 있었다.
 
화가 난 딘은 이왕 버린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자이언츠 타자들의 얼굴 가까이로 빈볼을 던져
차례차례 나뒹굴게 만들었다. 당시는 그런 위협투구도 얼마든지 정당한 투구기법으로 통했다.
 
9회에 뉴욕 자이언츠의 지미 리플은 정말로 얼굴에 맞을 뻔했다.
울화통이라는 병이 전염된 리플은 1루쪽으로 번트를 대고 뛰었고 수비하던 딘과 베이스 근처에서 일대 충돌을 일으켰다.
그들은 즉각 주먹질을 교환했고 양팀 덕아웃에 있던 선수들이 일제히 뛰쳐나와 난장판을 벌였다.
15분이나 계속된 집단난투극의 발단은 갑자기 강화된 보크판정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보크 시비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싸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찍혀 포드 프릭 커미셔너로부터
50달러의 벌금형을 얻어맞은 그는 나흘뒤 '이것도 보크냐'하는 시위를 벌였다.
 
2회말 1루에 주자를 둔 상태에서 딘은 '일시정지'의 규칙을 너무나 잘 지켰다.
지미 윌슨이라는 타자를 상대하면서
세트 포지션에 들어간 딘은 두손을 모아쥐고 무려 3분동안이나 꼼짝않고 서 있었던 것이다.
요즘같으면 그럴 경우 타자가 타임을 요구하고 물러설 수 있지만
그때는 투수가 일단 투구동작에 들어가면 타자가 타임을 걸 수 없던 시절이었다.
 
3분만에 1구를 던진 그는 2구째를 던지기까지 '일시정지 동작'을 4분이나 끌었다.
'일시'치고는 정말 긴 것이었다. 보다 못한 빈스 리어든 심판은 투수가 게임을 지연시킬 목적으로
필요이상으로 시간을 끌면 보크를 선언할 수 있다며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딘은 기다렸다는 듯이 따지고 들었다.
 
"나더러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거요? 멈추지 않아서 보크라고 하더니 이제는 확실하게 멈춘다고 또 보크요?"
딘은 마운드에 퍼질러 앉아 농성하며 프랭크 프리시감독이 제 편에 서서 심판과 옥신각신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감독의 그런 눈물어린 성원에 슬그머니 화가 풀린 딘은 그 게임을 6-2 완투승으로 이끌었다.
 
 
7. 1941년 31세의 젊은 나이로 부상때문에 은퇴한 디지 딘.
야구판을 떠나지 않고 세인트 루이스 브라운스의 전속 방송 해설을 한다.
거침없이 비난해설과 철자법 문법 다 무시하는 그의 말투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애들이 디지의 괴상한 말투를 따라한다며 학교 선생님들의 우려 섞인 편지가 올 정도
 
 
8. 1947년 "내가 던져도 너희들 보다 낫겠다!"라며 시즌 내내 브라운스 투수들을 비난해설.
참다 못한 브라운스 투수들 "그럼 어디 해봐!"
진짜로 디지 딘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 출전했고(7년만에 오른 마운드), 4이닝 무실점, 타석에서는 안타도 기록
 
 
 
 
메이저 최소승수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메이저 풀타임 6년동안에 성적은 150승 83패 방어율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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