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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 섬의 비밀



이스터 섬은 현재 우리에게 모아이가 있는 섬으로 잘 알려져있다.

태평양에 위치한 이 섬은 1000년동안 찬란한 문명이 발전했던 지상 낙원이었던 곳이다.

하지만 400여년전 섬의 주민들은 고립되어 잔혹한 문명의 끝을 맞게 된다.


어느 곳보다 살기 좋았던 지상낙원이었던 이스터 섬은 왜 끔찍한 지옥으로 변모하였을까? 오늘은 이스터 섬의 비밀을 알아보자.






< 이스터 섬의 위치 / 라파누이=이스터 섬 >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이스트 섬엔 어느 날 대혼란과 파괴가 찾아오고 섬주민이 사라졌다.

과연 이스터 섬에 살은 사람은 누구이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주민들은 이스터 섬을 땅의 끝이라고 불렀다. 태평양에 위치한 160km2의 섬.

이 곳의 주민들은 모아이라는 웅장한 기념비를 조각하는데 열의를 바쳤다.





< 이스터 섬의 모아이 >



3층 건물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두상과 흉상, 하지만 수백년전 모든것이 중단되었고 남은 것은 재앙뿐이었다.


현대의 탐험가들과 고고학자들은 이스터 섬의 지하동굴에서 고대인의 유골을 찾아냈다.

이로써 고대에 이스트 섬에 살던 사람들에대한 단서가 생긴것이다.


이스터 섬에서 3,800km를 가야 남미의 해안선에 도착할수 있다.

이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섬의 동쪽 페루사람들이 최초 정착민이라고 믿고 있다.


유골을 통해 이 섬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들은 폴리네시아인들로 밝혀졌다.
( 폴리네시아인 위키백과 참고 http://ko.wikipedia.org/wiki/%ED%8F%B4%EB%A6%AC%EB%84%A4%EC%8B%9C%EC%95%84%EC%9D%B8 )



초기 폴리네시아인들은 바람과 파도와 하늘만을 보고 넓은 바다를 여행했다.

또한 폴리네시아인들은 콜롬버스가 신세계를 발견하기 수천년전부터 남태평양을 개척했다.





< 폴리네시아인들의 분포 >



그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양문화를 이룩한 민족중 하나였다.

서기 500년에서 1000년사이 폴리네시아인들이 이스터 섬에 도착한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정착한 소수의 정착민들이 하나의 거대한 씨족사회를 만들게 된다. 문명의 전성기엔 이스터 섬에 약 2만명의 주민이 살았다.

이들은 섬 전체에 분포하여 살았으며 천여개의 거대한 모아이를 손으로 깎아만들었고 바퀴도 없이 섬 곳곳으로 옮겨졌다.





< 모아이의 분포도 >



이는 공동체협력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날 모든것이 중단되었다. 무엇인가 잘못된것이다.

이스터 섬은 3개의 화산으로 구성되어있다. 고대의 화산이 흘러 식어내리면서 그 결과 섬에는 많은 동굴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 이스터섬의 동굴 >


여러개의 동굴에서 고대 주민들이 살았던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상위에서도 생활하였다.

그들은 무엇때문에 지상위의 보금자리를 버리고 땅속으로 들어가야만했을까?


역사를 살펴보면 기후때문에 사람들이 동굴로 피신한 경우를 많이볼수있다.

하지만 이스터 섬의 기후는 온화하며 주민들의 집 또한 주거에 부족한 점이 없었다.


무엇인가 다른 이유때문이었다.


동굴 내부를 살펴보면 특이한 점을 알수있다. 동굴 입구에 돌로 벽을 쌓아 입구를 한사람정도만 드나들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즉 침입에 대비하여 방어적인 용도로 동굴을 쓴 것이다.




< 동굴의 입구 >



뿐만아니라 도주로까지 마련해놓았으며 동굴의 출입구들은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었다. .

이런 방어형 동굴뿐만아니라 동굴안에서는 흑요석으로 만든 도끼날과 창끝등이 발견되었다.




< 흑요석 무기날들 >



동물의 공격에 대비한 것이라 보기엔 이상하다. 이스터 섬엔 강하거나 큰 덩치의 육식동물은 살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적인 사냥도 없었다.

모아이 조각이 줄어들면서 반대로 무기의 양은 늘어났다. 문화의 변화가 시작된것이다.

협동적 사회가 폭력으로 분열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동굴에선 다량의 야자열매가 나왔다. 이 또한 특이한 점이다. 이스터 섬엔 야자나무가 없다.




< 이스터 섬의 풍경 >

학자들은 이것이 600전에 멸종한 야자나무에서 나온 열매라고 결정지었다.

토양에 남아있는 뿌리의 흔적이나 호수 밑바닥에서 발견된 고대의 꽃가루는 이스터 섬이 한때 산림이 가득 들어찬 낙원이었단 사실을 말해준다.




< 이스터 섬의 호수 >



당시의 섬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1,600만 그루의 야자수엔 달콤한 수액과 열매가 넘쳐났다.

야자수 그늘에선 20여종의 식물이 번성했다.


50명정도의 최초 이주민들에게 이스터 섬은 낙원이었을 것이다.

 지표면을 흐르는 샘과 강, 수백만 마리의 새, 물도 오염되지 않아 자원이 풍부했다.


수세기에 걸쳐 인구는 수천명으로 늘어남과 동시에 산림은 점차 파괴되었다.

주거용과 생활용으로 나무를 베었는데 이런 산림의 황폐화를 더욱 가속시킨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아이였다. 이스터 섬의 주민들은 거대한 모아이를 옮기기 위해 많은 나무들을 베었다.


 


< 모아이의 크기 >








< 모아이의 운반과정사진과 최근 밝혀진 서서 걸어가는 모아이 재현영상 >



그렇게 나무들은 빠른 속도로 없어져갔다.

모아이는 처음에는 조상을 위한 기념물로 제작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명예와 지위를 과시하는 경쟁 수단이 된듯하다.

과열된 모아이 건설때문에 수세기 만에 나무는 고갈되었다. 그리고 발견된 거의 모든 야자나무에서 쥐의 이빨들이 발견되었다.

원래 이스터 섬에는 쥐가 없었으나 최초의 이주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온 쥐들이 천적이 없는 이스터 섬에서 빠르게 증식하였던 것이다.

이 쥐들은 야자 열매를 모두 먹어 치워 새로운 야자나무를 자라게할 씨앗을 다 없애버린 것이다.



야자나무의 수가 줄어들자 자연히 야자나무의 그늘에서 보호받던 많은 수의 식물들도 사라졌다.

그와 함께 바다의 소금바람을 막아주던 야자나무가 사라지면서 자연파괴의 도미노현상은 더욱 빨라졌다.


재앙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야자나무가 없어지자 지표의 물이 오염되고 마르기 시작했다.
식량난을 겪게된 섬 주민들은 동굴을 벽삼아 밭을 만들었다.





< 동굴 속의 밭 >



이렇게 재배한 작물로는 섬 주민사람들의 식량난이 해결되긴 턱없이 모자랐다.

나무가 없어지면서 최종적으로는 바다에 나아갈 카누조차 만들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스터 섬 근처에는 산호가 거의 없기때문에 다른 섬들에 비해 물고기의 수가 적었다.

그래서 이스터 섬의 주민들은 카누를 타고 나가 큰 바다에서 참치나 돌고래를 사냥해와 식량으로 삼았다.

카누를 더이상 만들 수 없게 되자 물고기들도 많이 얻을수 없었고 그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다른 곳으로

이주할수 없게 되어 지옥의 섬에 고립된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대량의 식량은 바닷새였다. 당시 이스터 섬은 태평양 최대의 바닷새 서식지였다.

수백만마리의 바닷새와 함께 10여종의 가까운 육지 새가 살았으나 결국은 1종의 새만이 살아남아 현재에 서식하고 있다.


섬에 갇혀버린 씨족부족들은 자원과 식량을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원을 두고 싸웠으며 서로 죽였다. 결국에는 인육까지 기근을 피해 먹었다.


그것은 한정된 자원에서 살아남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숲이 없어지자 고지대의 표토가 침식작용으로 계곡을 매웠다. 높은 곳에 사는 부족들은 비옥한 땅을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자원이 풍부한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분쟁은 계속 심화되었다.

동굴 속에는 지금도 물이 고인 담수호가 있는데 식수가 부족해진 부족들이 이를 두고 얼마나 피를 보며 싸웠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모아이가 있던 곳은 자원이 가장 풍부한 곳들로 이 곳을 다른 부족들이 차지하면 모아이를 쓰러뜨리고 모아이의 눈을 파냈다.


 


< 모아이의 눈 >



피로 얼룩진 섬에서 부족의 대표자들은 새로운 규율을 만들어냈다. 바로 버드맨이다.

각 부족에서 엄선된 버드맨들은 험난 한 파도를 넘어 1.6km 떨어진 앞바다의 조그마한 돌 섬에서

 신성한 바닷새인 제비 갈매기의 알을 가지고왔다.


제일 먼저 족장에게 알을 갖다준 버드맨의 부족들이 그 해의 권력과 통치권을 가지고 갔다.

 이것은 식량분쟁의 해결책이었다.

경쟁을 통해 이스터 섬을 분배할 부족을 선정하는 민주적인 방법이었다.

이렇게 나마 평화를 유지하던 이스터 섬에 파괴적인 힘이 다가왔다.



바로 신대륙을 찾아나섯던 정복자들이었다.

 네덜란드 선적의 배가 이스터 섬을 처음 발견하고 상륙했다. 이스터 섬주민과 이 개척자들의 첫 조우는 총의 발포로 끝났다.

외부인들은 주민들을 학살하였으며 노예로 끌고 갔다.

이스터 섬에는 풍부한 자원이나 가치 있는 것들이 없었기때문이 이런 개척자들의 배는 오래 섬에 머무르진 않았다.


이들이 이스터 섬에 남긴것은 또 하나 더있었다. 바로 질병이었다.

1800년대 중반까지 매독과 천연두로 주민 수천명이 죽게되었다 한때 2만을 넘던 인구가 불과 4,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최초의 이주자들이 상륙한지 1,000여년이되는 1877년 살아남은 주민은 겨우 111명이었다.

지금은 그들의 후손이 이스터 섬에 살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스터 섬은 지상낙원에서 끔찍한 지옥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자연을 아끼지 않은 오만함에서 그들은 자연에게 죄를 받았고 종국에는 개척자들에 의해 고통받았던 것이다.



참고 : 네셔널지오그라피, 두산백과, 구글

 

 

 


http://www.nullstory.com/ho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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