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XEDITION

유머

킹덤에서의 장평대전...



진의 명장 백기


백기는 한나라를 공격해 상당지역을 뺏으려 하였다. 그러자 상당태수는 외교관계가 최악이었던

진나라에게 땅이 넘어가느니 동맹국이었던 조나라에게 주겠다며 조나라에게 땅을 바친다.

조나라는 무령왕의 계속된 개혁과 인상여, 염파, 조사 등의 걸출한 인재들의 활약으로 

당시 최강국 진나라와 몇번이고 전쟁을 해서 지고 이기고를 반복할 정도의 강국이었다.


조나라 효성왕은 당대 최고의 장수였던 염파에게 20만을 주어 상당을 접수하도록 하였고

진나라는 왕홀에게 역시 20만의 군사를 주어 진군했다.

장평에서 맞붙은 두 장군의 전쟁은 2년을 넘게 끌었는데 이는 염파의 작전이었다.

염파는 장기전을 노리면서 상대적으로 보급로가 길었던 진이 말라죽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당시 모든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서 왕따당하던 진나라로선 전쟁이 길어지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심지어 초나라가 이틈을 노려 진을 공격하려 한다는 첩보도 접수되었다.



이에 진나라는 곽개라는 간신에게 뇌물을 먹여서 염파가 경질되었고 조괄이라는 장수에게 

20만 군대를 새로 이끌고 가 지휘하도록 하게 하였다.

동시에 진나라는 왕홀을 부사령관으로 내리고 백기에게 전권을 주어 장평대전을 지휘하게 하였는데 필승카드를 꺼낸 셈이었다.

조괄은 병법에 능했다는 평대로 병법대로만 군대를 지휘하다가 백기에게 털렸고 목숨마저 잃었다.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거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한다는 지상담병. 혹은 조괄병법이라고도 한다.)

대장을 잃은 조나라 군대는 항복했는데 그 숫자가 30만이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백기는 그들을 모두 생매장시켰다.

다만 이는 진나라의 사정을 고려할 필요도 있는데 조나라는 위, 조, 한 연합군을 결성하여

사사건건 진나라에게 태클을 걸던 강국이었다. 30만이 넘는 군대를 돌려줘서 진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포로로 관리하기엔 진나라의 식량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20만이라는 장정이 2년동안 농사도 짓지 못하고 먼 타국에서 밥을 축내고 있었다.)



이후 조나라는 최약체국이 된다. 묘사에 따르면 농사를 지을 장정이 없어서 기근이 들었다고 한다.

'일할만한 장정은 모두 장평에서 죽었으며 어린 고아들은 아직 성장하지 못했다라는 묘사도 있다.'

심지어 전국칠웅중 공인된 최약체, 쩌리 연나라마저 조나라를 얕보고 군대를 이끌고 침공했다!

(물론 조나라가 아무리 약해져도 연나라따위한테 질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역으로 연나라를 공격해서 땅을 얻었다.)



이후 진나라와 겨루던 그 막강한 국력은 사라졌고 30년동안 근근히 방어만 하다가 멸망당한다.


이후 장평에서 수많은 유골들이 발굴되어 이 장평대전이 실존했던 전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유골들은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다고 한다.

후대 몇몇 사학자들은 비록 기록에는 30만 정도로 되어 있으나 장평대전 전후 조나라의 국력과 

상당에서 징병했을 병사, 그리고 유골이 발굴된 규모로 볼때 최소 45만은 장평에서 죽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장평에서 발골된 유해. 발굴되기 전에는 생매장이 아닐거라는 말도 있었지만 

대다수 유골에서 큰 상흔이 발굴되지는 않아 생매장으로 추정된다.



여담이지만 이 학살을 자행한 백기도 말년이 좋지 않았고 모함을 당해서 자결을 명령받는다. 백기는 이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되었는가...... 그래,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에서 항복한 40만 병사를 생매장하지 않았는가. 이것만으로도 나는 죽어 마땅하다."


전설에 따르면, 수백년뒤 당나라때 소가 벼락에 맞아 죽었는데, 살펴보니 '백기'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은 백기는 40만을 생매장한 일로 하늘의 노여움을 사 죄값을

모두 치루지 못하여 수백년이 지난 뒤에도 가축으로 태어나 벼락을 맞고 죽었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