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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만화

혜진이 옆에서 터벅터벅 걷다보니 어느덧 원룸촌으로 진입했어. 나만 그런진 모르겠지만 원룸촌이라는 지역은 특히 대학가 원룸촌은 알 수 없는 꼴림이 있어. 물론 누군가에겐 지긋지긋한 생활의 터전일 수도 있지만, 태반이 자취생, 하숙생이고 떡 친다고 누가 뭐라할 놈도 없는 그런 자유로운 곳이잖아? 난 그냥 원룸촌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좋아.


여튼 혜진이를 따라 들어간 곳은 2층짜리 주택이었어. 발소리를 죽이는 걸 보니 1층은 주인집인 모양이더라고. 여튼 혜진이가 앞장서 올라가고 내가 뒤를 따라 올라가는데 수없이 만지고, 얼굴을 박고, 꽃이를 박았던 엉덩이인데도 이젠 남의 거라고 생각하니 다시금 꼴리더라. 2층에는 3세대 정도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문을 따더니 혜진이는 날더러 들어오라고 했어.


"이렇게 내가 들어가도 괜찮나? 룸메이트는 없어?"


"같이 사는 친구 있는데 집에 내려갔어 지금은 아무도 없어"


난 혹시나 혜진이가 현우새끼랑 살림을 합치지는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더라. 2년반만에 헤어진 여친을 만났고, 집에 까지 들렀는데.. 이게 뭔가 존나 어색했어. 뭐랄까 바로 떡을 치면 차라리 더 자연스러울 것 같은 그런 침묵이 흘렀어. 뭐 하긴 할 말이 뭐있겠어 이미 쫑 나도 오래전에 난 사인데.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졸라 병신같은 질문을 했어.


"현우랑 같이 살 줄 알았는데 아니네?"


"무..무슨 소리야? ㅋㅋ 현우오빠 사귀는건 어떻게 알았어?"


"아.. 그냥 선후임들이 다 지역사람들이니까 이래저래 소식이 들리더라고"


질문을 하자마자 난 존나 병신!! 이 병신!! 하고 속으로 소리쳤지만 뭐 그걸로 어떻게든 대화가 풀려갔으니 다행인 셈이었어. 게다가 혜진이는 뭔가 자기도 설명하고 싶었다는 듯이 현우를 어떻게 만나게 됐으며, 어떤 방식으로 사귀게 됐는지를 술술 이야기했어. 나랑 현우새끼랑 존나 원수 사이였던 것도 사귀고 난 뒤에야 알게 됐다는 말을 덧붙였지.


"ㅋㅋ 현우오빠가 오빠 얘기를 되게 안 좋게 하더라고"


"헐 시발 대충 머 그렇겠지"


"뭐라고 했는지 안 물어봐?"


"그걸 알아서 뭐하게. 열만 받겠지. 근데 넌 나 이렇게 만나도 되냐?"


"못만날 건 또 뭐야? ㅎㅎ 그럼 가든지"


참 세월이라는 게 무섭더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얼굴을 붉히던 소녀가 어느덧 농짓거리를 툭툭 던지는 성숙한 여자가 돼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좌삼삼우삼삼한거 있지 시발..뭐 딴 건 둘째치고 난 혜진이를 다시 만나면 꼭 묻고 싶었던 걸 물어보기로 했어. 존나 찌질한 거지만 그만큼 궁금했거든.


"혜진아 근데 넌 도대체 날 왜 찬거냐? 그리고 그 뒤로 사귄다는 남자가 하아..왜 존나 멋진 남자가 아니라 현우 따위인거냐?"


혜진이는 생각을 정리하는 건지 눈썹을 위로 올리며 입을 삐죽거렸어. 근데 마침 혜진이 전화기가 울리고, 뭐라뭐라 통화를 하더니 잠깐 나갔다 온다는거야 시발.. 지 방에 나만 쳐박아 놓고 지가 나가버리면 난 뭐하라고.. 뭐 꼭 다시 만나 떡을 치려고 온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막상 만나면 혹시나..하고 기대했는데 말이야.. 근데 졸라 바쁜티를 내면서 그러는데 별 수가 없더라 걍 멍하게 다녀와~ 라고 말하는 수밖에..


그렇게 난 생뚱맞게 예전에 사귀던 여자의 자취방에 혼자 남겨졌어. 그래도 첫사랑이라고 믿어주는 건가? 내가 귀중품이나 이런걸 다 훔쳐서 튀면 어쩌려고 이러는건가 바보같은 생각이 들었어. 일단 화장실로 들어가 쪽창문을 열고 자라처럼 대가리를 내민 뒤 담배를 한대 피웠어. 존나 노매너지..


그리고는 방에 다시 돌아와 생각을 했어. 난 뭘 하면 좋은가. 본능처럼 화장실로 다시 가서 빨래통과 세탁기를 조사했어. 불행히도 세탁기는 텅 비어있었고 빨래통엔 양말 한짝밖에 없었어. 팬티는 좋지만 양말은 내 취향이 아니었거든.. 아쉬움을 뒤로 한채 옷장서랍을 열었어. 총 4단 서랍이었어. 맨 위칸을 열자 티셔츠 바지 뭐 차곡차곡 개어져있고, 두번째를 열자 팬티, 브라자가 나왔어. 세번째를 열자..응?? 다시 티셔츠 바지, 네번째는? 또 팬티 브라자였어. 시발 두명이서 두칸씩 쓰고 있는거였지. 어느칸에 있는 것들 냄새를 맡을 것인가..(뭐 일단 냄새 맡는건 자연스럽지 않나..) 결단을 내려야할 시기가 왔어. 혜진이 빤스면 당근 흠스멜하면서 냄새를 맡을 거였지만, 만약에 룸메거라면? 그리고 룸메가 존나 못생긴 돼지년이라면 그건 안될 일이잖아. 하지만 또 존예년일 수도 있지. 섣불리 포기해버릴 기회는 또 아닌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다면 내가 할일이 정해진 거였지. 사진..사진을 찾아야한다!! 나는 아무도 없는 여자 2인실 자취방을 뒤지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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