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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만화

예쁜 영어선생님의 텀블러

gunssulJ 2016.10.09 12:48 조회 수 : 399

때는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는 1학년부터 개병신 소리를 들으며 명성을 떨치고 있었는데 나의 이상한 정신상태 때문이었다.


흡사 중2병에 걸려 고독히 놀이터 그네를 타는 어린아이에 빙의하여, 이 세상은 나 혼자라는 망상월드를 가지며 살고 있었는데 이 상태에서 깨어난 건
1학년 2학기 이후지만 언제나 첫 인상이 그 사람의 평판을 반절이상 잡아먹고 들어가기 때문에 나는 학교에서 가장 씹병신 칭호를 달며 살 수 있었다,


그래도 무던히 노력해서 병신새끼에서 정상인 코스프레하는 단계까지 올라오는 기적을 이룩하게 되며 2학년부터는 보통의 아이들처럼 어울려 지낼 수 있었다.


사건은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후에 벌어졌는데, 어느때와 같이 친하게 지내던 무리에서 이 년은 가슴이 크네, 이 년은 코를 성형했네 같은 정력넘치는 남자아이들의 대화 사이를 가로지르는 어떤 10새끼 학생의 발언이 시발점이 된다.


" 근데 영어 선생은 도대체 텀블러에 뭘 그렇게 넣어놓고 마시는걸까? "


어느 학교에서나 물통 또는 텀블러를 들고 원시인 부려먹는 백인들처럼 '물 떠와라' 가 습관인 선생님들은 언제 어디에든 널려있지만 영어 선생만큼은 특별했다.
영어 선생은 여자였는데 얼굴도 어느정도 받쳐주고( 굳이 비교하면 가인) 몸매도 연예인 뺨은 못때리겠지만 강남 성괴들은 물리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허리라인과
볼륨. 성격은 노처녀 히스테리였지만 어린 남학생들의 시선에선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그 선생이 유독 날카롭게 반응하는 물건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텀블러였다.


이 선생은 절대로 학생들에게 물을 떠오게 시키지 않았다. 마음씨 착한 선생님들이라도 한 두번정도는 시켜볼 법 한데 이 선생은 절대로 텀블러를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였다. 실제로 하도 목이 말랐던 학생이 교무실 안에서 무심코 영어 선생의 텀블러를 한번 집었다가 전쟁의 신이 강림하였다는 목격담도 들려왔다.
또한 텀블러를 들고 마시는 것 까지는 목격을 했는데 한번도, 단 한번도 그 누구도 영어 선생이 텀블러에 물을 담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정수기는 복도에만 있었고 물을 마시기 위해선 허경영이라 해도 반드시 밖으로 나와야 했다.


결국 소재거리가 게임과 여자밖에 없던 이 남정네들은 순식간에 텀블러에 수상한 것(?)을 넣었다, 100만원짜리 홍이장군을 넣었다 등등의 다양한 주젯거리를 내며
옥신각신 싸우기 시작했는데 적당히 끝냈으면 좋았을 것을 이 병신새끼들은 별 것 아닌 일로 주먹이 오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학주가 등장해서 싸움을 정리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 그래, 뭐 때문에 싸우기 시작한거냐? "

" ...... ;;; "


아무도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어서 벌점을 추가로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싸움 이후에도 논쟁은 끊이질 않다가 결국은 한 친구가 제안을 하나 내놓았다.


" 그럼 직접 확인하면 되지 병신들아 "
씨발 그게 니 말처럼 쉽게 됬으면 진시황이 왜 죽었겠니 십새끼야


그 친구의 제안은 이러했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로 선생님들의 긴장이 많이 풀어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점심을 포기하고 선생님들이 식사를 하러 갔을때를 노린다.
문이 열려있다면 럭키, 안 열려 있다면 교무실 상단에 붙어있는 창문으로 넘어가서 빠르게 텀블러만 확인하고 우리도 점심 먹으러 가면 된다.


말이야 그럴듯 했으나 선뜻 하고 싶지는 않았다. 첫 번째로 나는 텀블러에 물이 들었든 뭐가 들었든 별로 궁금하지 않았고

두 번째로 나의 귀중한 점심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으며 세 번째로 위험을 무릅쓰고 위험부담을 안고싶지 않았으며

네 번째로 이런 참신하다 못해 병신같은 발상을 하는 상병신과 함께 교무실이 잠입해야 한다는게 썩 내키지 않았다.


그 병신새끼는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이런 건 반드시 2인 1조로 해야 한다며 우리를 꼬드기기 시작했고, 결국 남은 아이들끼리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로 했다.



" 야 그냥 우리 안하면 안되냐? "

" 아 왜, 우리는 이제 판도라의 상자보다도, 도라에몽의 주머니보다도 신비한 것을 확인하러 가는거야. 궁금하지 않아? "

" 별로 안 궁금한데... "

" 궁금해야 할거야, 왜냐하면 내가 궁금하거든 "

니가 궁금한거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해충같은 새끼야


결국 나는 점심시간을 할애하여 교무실 앞까지 끌려오다시피 했다. 그 친구는 조심스럽게 교무실 문을 두 번 똑똑 두드리고 귀를 갔다대어 인기척을 확인했다.
막 손가락으로 무슨 사인을 보내는데 시발년아 아무도 없는데 그냥 말로 하면 될것이지 왜 나도 못알아먹는 사인으로 사람을 병신취급하게 만드는걸까?


결국은 교무실 안에 아무도 없음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주변엔 학생이라곤 없었고 교사용 화장실에도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다.

교무실 문은 당연히 잠겨있었으므로 우리는 결국 교무실 상단에 있는 유리창을 넘어가기로 했다.
상단이라 선생님들이 관리를 잘 안했던건지 귀찮았던건지 잠금쇠가 걸려있지 않아 손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영어 선생님의 자리에서 판도라의 상자보다도, 도라에몽의 주머니보다도 신비한 그 텀블러에 다가갈 수 있었다.

후딱 끝내고 제육볶음이 나오는 점심을 먹고 싶어 텀블러에 손을 가져다 댔다.

텀블러를 조심스럽게 가져왔다.

그리고 텀블러 뚜껑을 열었다.


그 놈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냥 평범한 액체가 들어있었다. 진짜 그대로 물같은 액체가 들어있었다.

에이 별거 아니네 하며 빠르게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그 병신은 그 안에 평범한 액체가 있다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급기야 텀블러 안에 있던 걸 마시고는 나몰라라 도망치기 시작했는데 단지 그것뿐이면 좋았으련만, 그가 문을 따고 도망감과 동시에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내 안의 뇌세포는 야동보다 걸린 아이의 순간판단능력으로 이미 좆됬음을 느꼈으며, 머릿속에는 오직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인간이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라면 이성과 본능중에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자문자답을 해왔었는데 그 날에 이르러서야 정답은 본능이라는 것을 깨닫고

미친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내 심장소리와 뛰는 소리만이 크게 들려왔다는 것 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결국 그 날, 우리 둘은 전교생의 하교 시간을 약 세 시간이나 늦추는 주역이 되었고, 온 종일 방송으로 ' 교무실을 턴 범인을 잡아 족치겠다 ' 라는
분노에 찬 학주의 방송과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을 한 시간이나 듣고서야 해방될 수 있었다.

우리의 계획을 알고있던 남정네들은 수백개의 비난의 화살을 장착한 신기전을 들고 내 앞에 들이밀었으나, 모든 것을 쏟아내고 지쳐있던 나의 모습에
그들은 화살을 거두었다. 그리고 나는 그 병신새끼와 약 두 번정도 사건에 같이 휘말리며 절교를 하게 되는데 그건 좀 더 훗날에 있는 이야기이다.

그 날 이후로 그 텀블러 안 액체를 원 샷한 병신새끼는 이틀간 설사의 지옥속에서 고통받게 되는데 그 약의 정체는 결국 비밀에 붙여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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