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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 정연식씨
 
 
 
“50년 만에 국가로부터 공적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으신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1945년 해방 해에 태어난 정연식(70·강원도 동해시)씨는 1992년 아버지 정용화 선생이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서너 번에 걸쳐 보훈청에 공적을 인정해 달라는 신청을 냈다”면서
 
 “하지만 보훈청으로부터 ‘당시 공적을 입증할 만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힘들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아버지 정용화(1921년)씨는 1940년 12월 10일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치안 유지법 위반이 체포 이유였다.
 
1937년 강원도 춘천농업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그는 조국의 독립을 실현할 목적으로 교내 비밀결사단체인 독서회에 가입했다.
 
 이후 1940년 3월에 졸업할 때까지 농촌지역을 다니며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쳤다.
 
조국 광복을 위해서는 먼저 민중들이 깨우쳐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한글교육, 태극기 제작 등 농촌계몽운동과 민족사상 고취를 위한 활동을 하다가
 
1940년 일경에 체포돼, 이듬해 10월 21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연식씨는 “아버지는 학생 시절 야간에 농촌지역을 다니면서 왜경 몰래 한글을 가르치고 민족사상 고취를 위한 운동을 펼치셨다”면서
 
 “옥고를 치르고 난 뒤에는 일본의 철저한 감시로 인해 독립을 위한 활동을 전혀 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애국지사 정용화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다 옥고를 치렀지만 국가로부터 이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대한 기록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2년 춘천농고 독서회에 가입, 함께 활동했던 동문이 국가 문서보관소에서 판결문을 찾아내,
 
훈장을 추서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 이후 아들 정씨는 부산과 서울 등지의 문서보관소에서
 
 아버지의 판결문을 찾아냈다.
 
그 문서에는 ‘1941년 10월 21일 경성지방법원 치안 유지법 위반, 정용화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4년’ 이라는 기록이 또렷이 남아있었다. 

정씨는 “평소 독립운동을 했다는 얘기를 입 밖으로 내시지 않으셨고, 훈장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으셨다”면서
 
 “남에게 자신의 공적을 알리기를 꺼리셨던 아버지가 50년 만에 자신의 공적을 인정받아서인지
 
 훈장을 추서 받은 사실을 정말 기뻐하셨다”고 말했다. 

정 선생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기 전에는 광복행사에 일절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국 독립을 위해 옥고까지 치러야했던 노력을 정부가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외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훈장 추서 받은 그는 별세하기까지 10여년간 광복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는 2004년 10월 21일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70년 경찰에 투신한 아들 정씨는 초임시절 ‘순사’라는 말에 치가 떨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일제 치하에서 너무 오래있다 보니 사람들에게 ‘경찰’은 ‘순사’라는 인식이 배어있었다”면서
 
 “애국지사 아버지를 둔 탓에 누구보다 ‘순사’라는 말이 싫었다”고 말했다.  

32년간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퇴직한 그는 아버지와 같이 자신을 희생한 모든 애국지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자신은 물론 처자식을 다 잡아가 죽이는 것도 모자라 3대(代)가 싹 망하는 판에 누가 독립운동에 나설 수 있었겠느냐”면서
 
“죽을 각오로 독립운동에 나선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 시대가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친일’이라는 말에 ‘이가 갈린다’ ‘재산을 다 환수해야 한다’는 등 격하게 반응했다.
 
특히 독립운동가의 자손은 고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친일파의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사는 이 시대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정씨는 “이 나라와 사회는 독립유공자들과 그 후손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는 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반대로 일제 강점시기 남들 굶을 때 쌀밥을 해 먹던 친일파의 후손들은 몇 대에 걸쳐 남들 부럽지 않게 잘살고 있는 모습이
 
 과연 맞는 모습이냐”고 했다. 이어 “내 나이와 마찬가지로 조국 광복도 70년을 맞았다.
 
이제는 정부와 이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고 꼬집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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