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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가 생겨난 이유

데기라스 2021.01.19 10:03 조회 수 : 10

2003년 2월 중국과 홍콩에서 폐렴과 비슷한 괴질이 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괴질로 중국에서 죽어나간 사람이 수백 명이고 공포 때문에 검증 안 된 온갖 민간요법이 판을 친다는 내용이었다. 외신에 소문처럼 간간이 나오는 얘기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사실로 드러났다. 3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괴질에 정식 이름을 붙였다.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바로 사스(SARS)였다. 사스 공포는 한국까지 덮쳤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4월 사스 환자를 치료하던 홍콩 의사가 죽었다는 보도를 봤다. 감염자가 전 세계 수천 명에 치사율도 높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심각하다 느꼈다. 직접 챙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4월 23일 관계차관 대책회의를 열었다. 보건복지부는 국립보건원을 중심으로 사스방역대책본부를 가동시키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보건원의 사스 전담 인력은 4~5명에 불과했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화권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관광객, 유학생 등이 하루 7000명을 넘던 때다. 공항은 사스 방역의 최전선이다. 해외에서 밀려오는 외국·한국인 관광객 중에 감염자 한 명이라도 공항을 벗어나 국내로 들어온다면 큰일이다. 

4월 25일 인천공항으로 갔다. 먼저 사스 발병 지역인 홍콩에서 온 항공기 입국장을 방문했다. 감염 의심자 채혈 현장도 찾았다. 방역 창구 직원들은 고생이 많았는지 다들 피곤해 보였다. “24시간 교대로 일하고 인력이 부족해서 힘이 든다”고 했다.

바로 메모지에 내 사무실 팩스 번호를 적어 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간호사에게 줬다. “모든 애로사항은 여기 총리 사무실 팩스로 직보해 주십시오. 바로 처리 하겠습니다.”

현장을 다녀오니 사태가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지부 주도의 사스 방역대책본부로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대규모 방역은 한 부처의 힘만으로 안 된다. 상위 부처인 국무조정실이 나서 국방부, 행정자치부 등 관련 부처를 총동원해야 했다. 조영길 국방부 장관을 불렀다.

“사스 방역도 국가를 방어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군의관과 군 간호 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군 의료진 70여 명을 공항 사스 방역에 투입할 수 있었다.

이날 국무조정실 차원의 상황실을 만들라는 지시도 했다. 박철곤 복지노동심의관에게 실무 책임자 역할을 맡겼다. 여러 부처나 이해당사자가 복잡하게 얽힌 일을 잘 풀어내는 사람이었다. 

2003년 4월 28일 고건 당시 국무총리가 보고 읽었던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대국민 담화 원고. [고건 전 총리 제공]

4월 28일 범정부 차원의 사스 정부종합상황실이 출범했다. 당시 복지노동심의관으로 상황실 부실장을 맡았던 박철곤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의 설명이다.

“사스 방역의 1차 목표가 국내 유입 차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공항 현장에 가봤더니 입국자 체온을 측정하는 열 감지기가 1대뿐이었습니다. 일일이 체온을 재기엔 입국자가 너무 많았죠. 복지부에 예비비를 지원했고 서둘러 이동식 열 감지기 10대를 구입했습니다. 6대는 인천공항에 설치했고 김해·제주공항은 물론 중국 베이징의 공항에도 1대 보냈습니다. 또 착륙한 비행기에서 사람들이 내리지 못하도록 막고 나서 직접 기내로 들어가 열 감지기로 체온을 재고…. 곳곳을 다니며 정말 전쟁하듯이 사스를 막았죠.”

물론 정부만으로도 안 됐다. 민간의 협력도 필요했다. 4월 28일 오전 김광태 대한병원협회장, 김재정 대한의사협회장, 강문원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장 등 민간 의료단체 대표를 초청해 의견을 들었다. 이어 낮 12시 오찬을 겸한 사스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관련 부처 모두가 나서 대응하라”는 주문을 했다. 그리고 오후 2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정부는 사스 의심 환자를 10일간 강제 격리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필요 시 자택 격리나 병원 격리 조치에 지체 없이 동의해 주십시오.”

그렇게 사스 방역을 전쟁처럼 치렀다. 상황실로부터 하루 두 번 보고를 받으며 직접 챙겼다. 의심 환자는 있었지만 확진 환자는 1명도 내지 않으며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도 사스에 뚫렸지만 우리나라는 달랐다. 2003년 6월 19일 상황실 해단식이 열렸다. 고생한 직원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해단식 자리에서 강조했다. “지난 55일간 상황실 직원들, 국립보건연구원 직원들, 일선 검역요원들, 군 인력 등이 24시간 밤잠 설치며 열심히 방어해준 덕분에 사스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WHO는 우리나라가 사스 예방 모범국이란 평가를 내놨다. 

7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립보건원을 찾았다. 사스 방역 평가 보고를 받은 노 대통령이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같은 조직을 만드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그전 노 대통령과 주례 오찬에서 ‘한국판 CDC’가 필요하다는 김문식 국립보건원장의 건의를 전달했는데 받아들여졌다. 다음 해인 2004년 1월 19일 정식 출범한 질병관리본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스때문에 질병관리본부 만들었는데

메르스 못막고 욕먹는중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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