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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 Ruah Elohim 파워 워십팀

데기라스 2021.01.20 10:02 조회 수 : 4

Bo Ruah Elohim  파워 워십팀

미국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과 전세계 수십,수백만의 군중 앞에서의 공연으로 세계로 부터 극찬을 받은 워십팀! 미국,러시아,인도,페루,콩고,파키스탄,이스라엘....등등 세계적인 연합  대성회!

 

 

난생 처음으로 미니스커트를 입어 봤어요
- 송희경 집사




1978년 칠삭둥이로 태어난 저는 몸무게가 1.38kg에 불과했습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신생아 몸무게 중에서 가장 적은 체중이라고 하여 고려대 병원, 이화여대 병원, 세브란스 병원 등에서 연구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쌍둥이 언니는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났고, 저는 '선천성 경직성 뇌성마비'로 왼쪽 팔, 다리를 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저를 치료하시고자 유명하다는 병원과 의원을 찾아다니셨습니다. 가진 재산을 다 탕진할 정도로 저를 이곳 저곳 데리고 다니면서 치료해 보고자 백방으로 노력하셨습니다.

4cm나 짧았던 왼쪽 다리

부모님의 열성으로 어느 정도는 좋아질 수 있었지만 치료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왼쪽 다리는 오른쪽 다리보다 4cm 정도가 짧아서 걷느라 애쓰다 보니 척추가 휘어지고 골반이 뒤틀려지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하면 10% 정도는 성공 가능성이 있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한다고 해서 아예 수술을 포기하고 침과 뜸 등 민간요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한쪽이 짧은 다리로 뒤뚝뒤뚝 걷다 보면 여러 개의 대못을 박는것처럼 고통이 심해서 차라리 하반신이 없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밤이면 엄청난 고통과 싸우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자니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도 몸무게는 35kg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몸이 아픈 것보다도 마음의 응어리가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체육 시간이 되면 운동장 한쪽 귀퉁이나 스탠드에 앉아 열심히 뛰어다니는 친구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더 괴로운 것은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할 때였습니다.
"저기 다리병신, 절뚝발이가 지나간다."
"와하하 …"

짓궂은 남자 아이들은 절뚝거리며 걷는 제 모습을 흉내내며 놀리곤 했는데 그 때마다 저는 속이 상하고 창피하여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 버렸습니다.
"엄마, 나는 왜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되나요?"
놀림을 당하고 집에 돌아온 날이면 그렇지 않아도 애태우고 계신 엄마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저는 길이가 다른 다리를 감추기 위해 항상 바지를 입었고, 뒤틀린 골반을 가릴 수 있는 펑퍼짐한 박스 티를 입고 다녔습니다. 불편한 몸과 함께 제 마음은 상처로 얼룩져 가고 있었습니다.

자상하게 믿음을 심어 주시던 담임선생님의 인도로

그러던 1991년 어느 날,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담임이셨던 서정란 선생님이 저를 안타깝게 여기시고 믿음을 심어 주고자 애쓰셨습니다. 방과 후에 이재록 목사님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들에 대해 전해 주시면서 「엿새 동안의 만나」라는 책자를 통해 성령과 방언 은사에 대해, 그리고 믿음의 단계 등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늘 용기와 위로를 북돋아 주시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어느 새 '나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은 당시 출석하고 있던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고 금요일날 선생님께서 다니시던 교회의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날 이후 제 마음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알 수 없는 희망이 가득했습니다.
그 때부터 매주 금요일이면 부모님의 염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만민중앙교회의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버스와 전철을 두 번씩 갈아타야 했기에 두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제가 늦게 들어오는 것을 염려하시는 부모님의 반대로 교회에 못 가는 날이면 집에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며 기도했고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결국 응답을 받아 금요철야예배를 온전히 드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제 모습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민하고 날카롭던 성격이 무던해졌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다리의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때에 더 이상 제 키가 자랄 수 없다고 했는데 키도 점점 자랐습니다.
매년 열리는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를 통하여 암이나 결핵 등의 난치병이나 뇌성마비와 같은 장애까지도 치료받는 것을 보았기에 제 다리도 온전히 고침받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학생이었던 저는 학교 수업과 성회 시간이 겹쳐 자유롭게 참석할 수가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지금은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대학에 들어가면 꼭 부흥성회에 참석해서 치료받아야지!" 이렇게 스스로 위로할 뿐이었습니다.
1997년, 드디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저는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자 대학부 찬양팀 코러스에 입단하였습니다. 그러나 한쪽 다리가 짧아 장시간 서 있을 수 없었기에 맨 앞 의자에 앉아 찬양을 했습니다.
사정을 몰라 의아해하는 형제자매들에게 앞으로 부흥성회 때에 꼭 치료를 받아서 단에 서서 찬양을 하리라고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가장 먼저 치료받아 영광돌려야지"

1997년 2월 10일부터 3월 30일까지 열린 49일 작정 철야기도회에 참석하여 정성을 다해 기도를 했습니다. 작정 철야기도회가 끝나는 날 마련된 시상식에서 저는 추첨되어 상을 받으면서 이번 부흥성회 기간중에 꼭 치료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더욱 강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금식하고 기도하며 고대하던 「제 5회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가 5월에 열렸습니다. 저는 "이번 부흥성회 때 내가 가장 먼저 치료받아 첫번째로 간증해야지!" 하고 다짐하였습니다.
1997년 5월 6일, 오후 첫 환자집회 때에 강사님께서 단에서 환자 전체를 위해 기도해 주실 때 아픈 곳에 손을 얹고 "아멘, 아멘" 하며 믿음으로 기도받고 있는데 갑자기 허리가 파스를 붙인 것보다 더 시원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강사님께서는 수백 명의 환자들에게 일일이 안수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안수기도를 받기 전부터 '단 한 번의 기도로 치료받겠다'라는 확신이 왔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기도를 받을 때는 '다 나았으니 뛰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저는 치료받은 것을 확증하기 위해 신발을 벗어 버리고 땀으로 옷이 흠뻑 젖도록 껑충껑충 뛰었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왼쪽 다리가 땅에 닿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양쪽 다리를 똑같이 구부리고 무릎을 꿇어도 몸이 기울어지지 않았으며 왼쪽 무릎이 부드럽게 구부려지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4cm나 짧았던 다리가 정상이 되고 키도 자라
그리하여 저는 이미 믿음을 고백하였던 대로 당시 성회 때 맨 처음으로 치료받아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제 다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4cm나 짧았던 다리가 길어져 정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휘었던 척추가 펴지면서 뒤틀린 골반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다리도 길어진 것입니다.
부흥성회가 끝나고 이재록 목사님을 뵙고 치료받았음을 간증하자 기뻐하시며 "키가 150cm를 넘었겠네요."라고 하시길래 저는 얼른 "아멘" 하고 믿음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정말로 집에 돌아와서 키를 재어 보니 부흥성회 전까지는 147cm이었던 키가 150cm가 조금 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선천성 경직성 뇌성마비'를 온전히 치료받은 저는 충만한 기쁨 속에 늘 간증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학교 다닐 때 교복이나 단복을 입은 것을 제외하고는 제 모습을 감추느라고 짧은 스커트는 한 번도 입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짧은 스커트도 마음껏 입고 다닙니다.
요즘은 캠퍼스와 병원을 다니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전하고 있습니다.
평생 아픔 속에 살아가야 할 저를 치료해 주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송희경 집사

칠삭둥이로 태어난 저는 선천성 경직성 뇌성마비로 인해 척추가 15도 각도로 휘어져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골반까지 틀어진 채 어린 시절부터 왼쪽 다리가 땅에 닿지 않아 절뚝거렸습니다. 1997년 5월, 제5회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에 참석해 첫날 환자 집회 때 기도를 받는 순간, 마치 척추에 파스를 붙인 것처럼 시원했습니다. 이후 병원 진단 결과, 휘었던 척추가 펴지고 뒤틀린 골반이 정상으로 나타났습니다. 4cm나 짧았던 왼쪽 다리가 길어져 발뒤꿈치가 땅에 닿으니 편안하게 걷고 예쁘게 치마도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 어릴적 모습 2. ▲ 치료후 다리 길이가 같아진 모습



▲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이룬 송희경 집사

 
안경을 벗고도 생활할 수 있다니 꿈만 같습니다
- 이정환 집사 (춘천만민교회)
저는 강원대학교 환경계획설계평가연구실 연구원입니다. 하루 일과 대부분을 모니터 앞에서 보내는 관계로 시력이 무척 좋지 않았습니다. 대학 강사인 제 아내 이영욱 집사 역시 시력 저하로 불편을 겪고 있었지요.
지난 4월, 희소식을 들었습니다. 6월에 세 차례에 걸쳐 당회장님께서 직접 특별 은사집회를 인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정확한 시력 측정을 위해 안과를 찾았습니다. 저는 시력검사표 10cm 앞에서도 가장 큰 글자가 흐리게 보일 정도였고, 아내는 양안 0.1이었습니다.

저희는 '특별 은사집회 때 꼭 치료받아야겠다'는 기대와 소망으로 한껏 부풀었습니다. 하루하루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썼습니다.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 앞에 정성을 내보였지요.

형님 부부(이관규 강원대 조경학과 부교수, 임수희 집사)는 불임으로 고통받다가 당회장님 기도를 받고 결혼 13년 만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기적 같은 하나님 권능을 보았기에 저희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1차 특별 은사집회가 열린 지난 6월 10일 저는 춘천에서, 아내는 강의를 마친 후 대구에서 서울 만민중앙교회로 달려왔습니다.

2부 시간, 당회장님께서 단에서 '환자를 위한 기도'를 해 주실 때였습니다. 순간 저와 아내는 눈이 뜨거워지는 현상을 체험했습니다. 치료받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즉시 안경을 벗고 확인했습니다.

"어! 뿌옇게 보이던 색들이 선명하게 보여요!" 아내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저 역시 단에 계신 당회장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어 개인 안수기도를 받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이번 특별 은사집회에는 한 주에 4천여 명의 환자가 등록을 했다고 합니다. 이날 시력 환자는 1,095번까지 기도를 받았습니다. 저희는 295, 296번이었지요. 안수기도를 받은 후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안경을 새로 맞출 때처럼 선명하고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까.

저희 부부는 간증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단에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간증자가 너무 많아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지요. 얼마나 시력이 좋아졌는지 특별 은사집회를 마치고 춘천까지 안경을 벗고 운전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6월 17일, 2차 특별 은사집회는 춘천만민교회에서 화상으로 동참했습니다. 토요일 아침 9시경 눈을 떴을 때 또 한 번 놀랐습니다. 그동안 형태만 보였던 벽시계가 분침까지 또렷이 보였고, 안구건조증 때문에 눈이 자주 충혈되는 증세도 사라졌습니다. 아내도 심한 난시로 인한 두통이 사라졌지요, 지금은 안경을 벗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리며,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권능의 기도로 시력까지 회복되니 행복합니다"
 
간증하는 주현권 목사 (3대대 대교구장, 61세)


저희 가족은 주님을 영접한 후 35년 동안 병원이나 약국과는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1996년 말경부터 시력이 약해져서 2000년부터는 0.3(우안), 0.5(좌안)로 항상 안경을 착용하고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지난 8월 3일, 만민 하계수련회 시작 전날입니다. 밤에 꿈을 꾸었는데 종기에서 빠져나온 종기 뿌리를 보았습니다. 저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이번 수련회는 어느 해보다도 권능의 역사가 더 크게 대폭발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에 '내게도 영육 간에 축복의 수련회가 되겠구나!' 하는 기대와 벅찬 마음으로 수련회에 참석했습니다.

수련회 첫날 저녁, 교육 시간에 은혜의 단비가 내렸습니다. 빗물로 안경이 뿌옇게 돼 저는 안경을 벗고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그런데 흐릿하게 보이던 사물이 어느 순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까? '어! 시력이 좋아졌네!' 저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어 읽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작은 글씨도 잘 보였지요.

이어진 은사집회 때 눈에 손을 얹고 당회장님의 환자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시력이 더욱 좋아져서 다음 날 체육대회 때에는 안경 없이 릴레이 선수로 달릴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정을 모두 마치고 상경할 때는 야간에 빗길임에도 불구하고 안경을 착용하지 않고 고속도로를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Traditional" Korean Fan Dance in Israel
 

인류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공연!  첫째날 공연    전세계 220개국 에서 수백만명이 관람한 공연! 이스라엘 에서 전세계 220개국 으로 "십자가의 도"가 선포 되고 폭발적인 하나님의 권능이 이스라엘을 진동 시켰습니다. "전세계 20억 크리스천 들이여!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 되었습니다."[만민중앙교회]

 

2009 이스라엘 대성회 첫째날 실황
창조주 하나님과 선민 이스라엘을 사랑하심을 증거.
GOD is Great -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창조주 하나님"

   
2009 이스라엘 대성회 둘째날 실황
창조주 하나님과 선민 이스라엘을 사랑하심을 증거.
복음과 권능, 이스라엘을 강타하다!
"예수가 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가?"

 
 
이스라엘 성회 하이라이트(2) [고화질]
① 하이라이트
② 이스라엘 둘째날 - 인터뷰 / 공연 하이라이트 / 말씀 / 환자를 위한기도 / 간증

 

[특집] 2009 이스라엘 연합 성회 - 예루살렘을 뒤흔든 하나님 권능! 전 세계에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메시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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